현대 합의 긍정평가..적십자회담 등 가능성 시사

정부는 17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합의 사항에 대해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환영의 뜻을 표하고 당국간 대화를 통해 합의 이행을 모색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북한이 이날 5개항의 공동보도문 형식으로 발표한 현대와 아태평화위간 합의 사항은 ▲비로봉 관광 개시를 포함한 금강산 관광의 조속한 재개 ▲금강산 관광 편의와 안전 보장 ▲육로통행 및 체류 관련 제한 해제 ▲개성관광 재개 및 개성공단 활성화 ▲백두산 관광 개시 ▲추석때 남북 이산가족 상봉 등 5개다.

이날 새벽 언론보도로 이 같은 합의 내용들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당국자들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합의사항중 통행 및 체류제한 해제 말고는 남북 당국간 협의가 수반돼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특사가 아닌 민간 사업자 자격으로 방북한 현 회장에게 이 같은 합의사항을 도출해오라는 당국 차원의 구체적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애초 이산가족 상봉과 같이 현대가 직접 개입할 게재가 아닌 사업들이 합의문에 명확하게 들어가자 당국자들은 "현 회장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봐야 입장을 밝힐 수 있겠다"는 유보적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날 정부는 현 회장 귀환 전인 오후 1시30분 통일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합의 내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되, 민간 차원의 합의인 만큼 당국간 합의를 거쳐야 이행할 수 있다'는 정리된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정부 소식통은 "합의의 주체 등 형식적인 문제를 엄격히 따지면 현대가 합의할 사항은 아닌 것들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합의 사항들이 대부분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일들인만큼 너무 형식을 따지기보다는 일단 당국간 대화를 통해 북한의 진의를 확인하자는 쪽으로 정리가 됐다"고 소개했다.

이 같은 입장에는 남북 당국간 대화를 본격 재개함으로써 1년6개월 가까이 갈등 일변도였던 남북관계에 변화를 모색할 때가 됐다는 정부의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부는 현정부 출범 이후 북한인권, 납북자.국군포로, 탈북자 등 인도적 대북 현안에 대해 이전보다 한층 목소리를 내면서도 우리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인도적 관심사인 이산가족 상봉은 한번도 성사시키지 못한데 대해 부담이 적지 않았다.

그런 터에 북측이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추진하자는 의사를 현 회장을 통해 전해왔는데 굳이 형식 문제를 들어 거부할 필요는 없다는 인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 방북을 계기로 한 정세 변화 가능성을 감안할 때 남북관계를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향후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협상 틀이 가동될 때 우리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는 판단도 했을 수 있다.

이런 입장을 정리함에 따라 정부는 남북적십자회담을 필두로 한 당국간 대화를 통해 이번 현대와 북한간 합의사항 이행을 모색한다는 복안이다.

특히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공동보도문 내용 중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 정부는 남북적십자회담이 빠른 시일내에 개최돼 추석 이전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질 수 있도록 우선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 제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정부가 남북 당국 대화에 나설 경우, 최우선 과제는 현대와의 합의에 담긴 북한의 진의파악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대남 관계에서 당국과는 계속 각을 세우면서 민간 교류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만 얻겠다는 이른바 '통민봉관(민간과의 교류는 열고 정부차원의 대화를 차단한다)'을 구상하는 것인지, 남북관계의 전면적 개선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등을 우선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국제적인 대북제재 국면에서 북측이 우리와 '현금장사'를 진행함으로써 국제공조에 균열을 야기하면서 실속을 차리려는 셈법일 가능성 역시 경계해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정부가 북한과 적십자회담 또는 금강산.개성관광 재개를 위한 당국간 회담 등을 북에 제의하고 북한이 진정성 있게 호응해올 경우 이번 현대와 아태평화위간 합의는 당국간 합의로 발전할 수 있지만 `통민봉관'의 태도를 보일 경우 `부도수표'가 될 공산을 배제할 수 없다고 당국자들은 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