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개성공단 2차 남북회담에서 북측 근로자 월급 300달러로 인상 등 조건을 통보해오면서,입주기업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106개 입주기업을 대표하는 개성공단기업협회는 12일 서울 서소문 사무실에서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그간 남북 관계 악화로 입주 기업들은 감당할 수 없는 경영상의 손실을 장기간 입었으므로 정부가 긴급 운영자금과 퇴로를 열어줄 수 있는 대책을 세워 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5월 북측의 개성공단 계약무효 선포 등으로 사태가 악화된 후 협회 차원에서 퇴출을 언급하기는 처음이다.

김학권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 등 입주기업 대표 26명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입주 당시 남북 정부가 합의한 계약 조건과 다른 어떠한 일방적인 인상안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입주기업들은 이어 "신변 보장과 통행 등 경영환경이 개선되고 현재의 낮은 생산성이 향상된다면 기본 계약조건을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임금 인상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성공단기업협회가 입주기업 82개사를 조사한 결과 북한이 공단의 상주 인원을 880명으로 제한하고 통행시간을 축소한 작년 12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6개월 동안 모두 313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집계됐다. 기업별로는 최소 1500만원에서 최대 38억원까지 손실을 봤다. 입주기업들은 또 합숙소와 탁아소도 합의한 대로 건설 할 것을 정부 측에 요구했다.

◆절망적인 상황

이날 2시간30분 동안 진행된 긴급 대책회의에 참석했던 한 입주사 대표는 "현재 실무협상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사태를 지켜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 대표는 이어 "북측 요구사항이 너무 터무니없어 기업들로선 대책조차 세우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입주기업들은 북측이 전날 월급 300달러로 인상과 연 임금인상률을 5%에서 10~20%까지 조정해줄 것을 요구한 데 대해 절망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다른 입주기업 대표는 "월 300달러는 중국 상하이의 1급 샐러리맨 월급"이라며 "그 임금을 주고 개성에서 사업할 사람이 있겠느냐"고 황당해 했다.

중국과 베트남에서 섬유 공장을 운영 중인 한 입주기업 사장은 "최저임금에다 복리후생비를 합쳐 북측 근로자에게 1인당 월 평균 105.5달러를 지불하고 있다"며 "중국 상하이 근로자의 170달러 수준에 비해 낮지만,베트남 호찌민 근로자(평균 85달러)보다 높다"고 말했다. 그는 "북측 근로자들은 생산성이 떨어져 야근 특근수당까지 지불해야 물량을 맞출 수 있는데다 산업인프라도 열악해 추가 비용까지 합산하면 개성 근로자의 1인당 실질임금은 180달러에 육박한다"고 설명했다.

◆상당수 업체는 철수 준비

한 입주기업 대표는 "이미 개성공단에서 나오기로 한 업체가 발생한 상황에서 입주기업들이 수용 가능한 절충안이 마련되지 못할 경우 철수기업들이 늘 수밖에 없다"며 "경협보상금을 받고 나오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있을 뿐 일부 기업들은 철수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 섬유 업체 사장도 "북측이 당초 계약을 무시하고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면서 개성공단의 생명력은 사실상 상실됐다"며 "4배가 아닌 2배만 올려줘도 개성에서 사업하기 힘들어 철수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일부 입주기업들은 협상의 주도권을 뺏기고 있는 정부에도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한 입주기업 대표는 "정부가 기숙사 설립이나 출퇴근 도로 확보 등에 좀 더 의지를 보이고,중단했던 쌀 비료 지원 등을 통해 협상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입주사 대표는 "임금인상폭은 입주기업들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며 "향후 협상과정에서 기업들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목소리들이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