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억류중인 미국 여기자 2명에 대한 재판을 종료함에 따라 북미간 석방 교섭 전망으로 이 문제의 초점이 옮아가게 됐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미국의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 주도, 북한의 2차 핵실험, 미국의 안보리 제재결의 추진 등으로 북미간 대립이 심화되고 있어 미국 여기자들의 조기 석방이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은 이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사과 표명 및 석방 촉구를 담은 서한을 북한에 보내는 등 두 여기자의 조기 석방을 위해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클린턴 장관은 지난달 북한이 재판 일정을 결정하자 이란이 억류했던 미국인 여기자 석방과 같은 맥락에서 사태 해결의 신호로 볼 수 있다며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상황에 따라 특사를 파견할 수 있다는 입장을 시사했으며, 실제 특사로 앨 고어 전 부통령이 거론되고 있다.

클린턴 장관은 또 이번 사안이 순수하게 '인도주의적' 문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 미국 여기자들 문제는 단순히 인도주의 문제가 아니라 북미간 정치적 사안이다.

북한 당국이 미국 여기자들에게 중형을 내린 죄목인 '조선민족 적대죄'는 이러한 북한 당국의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여기자들의 취재 목적인 탈북자 문제와 북한 인권문제는 북한이 체제문제와 직결시키는 사안들이다.

이는 북미관계가 온기류일 때도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최근 북미간 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미국이 북한에 대해 금융제재를 포함해 봉쇄 수준의 제재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여기자들 석방문제는 북한이 제재수위를 낮추기 위해 미국 압박에 활용할 수 있는 희귀 카드중의 하나다.

클린턴 장관은 대북 특사를 파견하더라도 여기자들 석방문제만 논의하는 순수하게 인도적 목적의 특사가 될 것이라고 못박았지만, 북한이 여기자 석방을 미국의 호감을 사서 미국의 선의를 기대하는 선에서만 활용할 가능성은 작다.

북한이 과거 미국인들을 억류한 경우가 여러번 있었지만 재판까지 간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며, 12년노동교화형이라는 중형을 선고한 데서도 이 사안을 다루는 북한 당국의 입장이 잘 드러난다.

지난 1996년 한국계 미국인 에번 헌지커가 압록강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가 간첩혐의로 억류됐을 때도 북한은 재판 단계에 가기 전에 미국 특사를 받아들여 풀어줬고, 간첩 혐의에 대한 형사상 벌금 10만달러를 요구하기도 했지만 미국이 응하지 않음에 따라 호텔 숙박료 5천달러를 지급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북한이 두 여기자의 조기 석방 요구에 순순히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북한이 미국의 선의와 대외 여론 개선을 기대하며 석방 교섭에 적극 응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장거리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의 원래 목적이 미국과 대립구도 심화 자체에 있었던 게 아니라면 현 북미대립 국면을 푸는 소재로 여기자 석방문제를 적극 활용하려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북한은 2차 핵실험까지 강행한 뒤 후속 카드가 '말을 통한 위협' 외에 실효성있는 게 없는 상황이다.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 카드는 이미 장거리 로켓 발사로 신선도가 떨어지고, 자칫 실패할 가능성도 있으며, 우라늄농축프로그램 추진 선언 역시 북한의 현 기술과 설비상 당장 크게 위협적인 수준은 아닌 채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을 부채질하는 결과만 초래할 수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여론 관리 차원에서도 여기자들을 장기 억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장용석 평화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북한은 재판 종료로 사실상 이 문제에 대한 법적인 절차를 마쳤기 때문에 대내적으로 활용할 만큼 활용한 셈"이라며 "여기자 문제는 북한의 대미 협상 카드로 유효하지만, 상황관리 차원에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과 대북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핵문제와 연계시키지 않고 북미간 협상을 통해 여기자들을 풀어주는 선의적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한편 북한이 12년형을 선고한 미국 여기자들을 노동교화소에 구속할지 여부도 주목되지만, 북한의 노동교화소는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최악의 장소라는 점에서 북한이 미국 여기자들을 이곳에 수감하지 않고 별도의 장소에 수감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chs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