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이명박 대통령의 봉하마을 조문을 앞두고 부심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장례 기간 중 빈소가 있는 김해 봉하마을을 직접 방문키로 했지만 현지 사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마저 "상황이 좋지 않다"며 노 전 대통령 극성 지지자들에 의한 돌발 상황을 우려하고 있어 조문 일시와 방법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25일 "현재로선 조문 날짜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라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경호문제 등을 고려해 사전 예고 없이 전격적으로 봉하마을을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문제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일부 회원들과 극성 지지자들이 그간 보여준 행태다. 이들은 분향소 주변에서 큰소리로 구호를 외치거나 욕설을 퍼붓는 등 돌출행위로 장례준비위원회 측마저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조문객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호불호에 따라 선별적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여권 인사들은 대부분 조문을 거부당하고 있으며,멱살잡이를 당한 채 쫓겨나거나 계란과 물병 세례를 당하는 수모도 다반사다.

이날 봉하마을을 찾은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정몽준 최고위원 등 한나라당 지도부도 사복 경찰 200여명을 앞세우고 노 전 대통령 빈소로 향했지만 마을 진입로 입구에서 노 전 대통령 지지자 100여명에게 저지를 당했다. 물을 뿌리며 "봉하마을에는 왜 왔느냐" "살인정권 물러가라" 등의 욕설을 들은 이들 조문객은 문 전 비서실장과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의 답례만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앞서 김형오 국회의장은 욕설과 함께 물세례를 당했으며,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한승수 국무총리,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등 거물급 정 · 관계인사들도 노사모 회원 등의 반발에 부딪혀 조문이 무산됐다. 이를 보다못한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이 "문상 오는 사람을 막는 법은 없다. 상주를 대신해 부탁드린다"고 호소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이들 성난 무리는 "노 전 대통령을 자살로 몰고 간 이 대통령은 절대 분향소에 발을 못 붙이도록 몸으로 막을 것"이라고 벼르고 있는 상황이다. 문 전 비서실장은 "대통령 조문은 대단히 고마운 일"이라면서도 "염려가 되고 걱정이 된다. 통제가 잘 되지 않는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추모식이 이념 갈등을 넘어 화해와 상처 치유의 장이 되기를 바라는 대다수 국민들의 염원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노혜경 전 노사모 대표도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면서까지 이루고 싶었던 것은 국민통합"이라며 "'조문외교'라는 말도 있듯이 노 전 대통령과 서로 적대적인 입장에 섰던 분들이 진심으로 와서 조문하면 좋겠다"는 희망을 나타냈다.

현지 사정이 반드시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긍정적인 신호도 있다. 상당수 방문객들은 "노 전 대통령이 조용히 평화스럽게 떠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화합차원에서 조용히 문상만은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마을 질서도 전반적으로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잘 지켜지고 있다. 자원봉사자와 진영농협 봉사자 등 200명 이상이 묵묵히 땀을 흘리고 있다.

이 대통령 경호를 책임져야 하는 청와대와 경찰은 비상이 걸렸다. 특히 폭 5m 남짓한 도로가 빈소로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인 점 등 봉하마을의 지리적 상황은 경호에 취약점이다. 이에 따라 청와대 경호처는 다양한 경호대책 시나리오를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지방경찰청은 이날 오전부터 하루 전보다 두 배 이상 보강된 14개 중대 1000여명의 경찰을 봉하마을 곳곳에 배치해 이 대통령과 주요 인사들의 방문에 대비한 비상 경계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감안,이 대통령이 29일 서울 경복궁 영결식장에 참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봉하마을=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