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검찰수사에 대한 심리적 압박,도덕성이 무너진데 따른 자존심의 상처,피의사실이 실시간으로 보도되는 것에 대한 인간적 모욕감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유서를 보면 노 전대통령은 무엇보다 가족과 측근들에 대한 검찰의 전방위 수사에 대해 심리적으로 큰 압박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노 전 대통령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고,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며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고,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고 괴로운 심정을 밝혔다.특히 노 전 대통령은 검찰수사가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까지 확대된데다 부인 권양숙 여사마저 재소환 통보를 받자 식사마저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당초 23~24일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재소환한 뒤 다음주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었다.유서를 작성한 시각이 새벽 5시 10분이라는 점은 노 전 대통령이 매우 고통스러운 밤을 지낸 뒤 자살을 결심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자산이자 무기인 도덕성이 무너지면서 견디기 힘들 정도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도 자살의 한 요인으로 풀이된다.노 전 대통령은 도덕성을 최대 무기로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정작 본인이 수뢰 혐의자로 몰리면서 마지막 버팀목까지 사라진 상황을 인정할 수 없었다는 것.

노 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제가 이미 인정한 사실만으로 저는 도덕적 명분을 잃었다”며 ”더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지지자)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다“고 낙담한 심경을 밝혔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느낀 인간적인 모욕도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직무관련성이나 사전 인지 부분을 부인하자,수사 내용을 조금씩 흘리면서 사실상 ‘여론몰이’식 수사에 주력했다.수사 과정에 대한 실시간 생중계는 노 전 대통령에게 모욕감을 안겼다.

여기에 회갑 선물로 싯가 2억원 상당의 시계 2개를 받았다는 등 수사와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사실들도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이에 따라 이번 자살 사태와 관련,검찰 수뇌부나 중수부 수사팀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검찰이 한 사람을 정치적으로 매장시킨 타살행위를 한 것“이라며 “얼마나 수모를 줬느냐.해도 해도 너무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노 전 대통령 측이 한 해명마저도 거짓이었다는 점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속속 드러난 것도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3억원에 대해 노 전대통령은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에 글을 올려 “집에서(권양숙 여사)받아서 빚갚는데 썼다”고 해명했다.그러나 이 돈은 그대로 정상문 전 비서관의 지인 통장에 남아 있는 것으로 검찰 수사결과 확인됐다.또 박 전 회장으로 부터 2007년 청와대 관저에서 받은 100만 달러의 경우도 노 전 대통령은 “저의 집에서 받아 사용했다.미처 갚지 못한 빚이 남아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 이돈은 대부분 자녀들의 유학비로 쓰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 측근들에 대한 의리와 인간적 연대를 중시해 온 노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가까운 사람’들의 줄구속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홍경태 전 청와대 행정관은 “가족보다 자신의 참모들과 후원자들이 고초를 당하고 있는데 대한 부담이 컸던 것 같다”며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는 분인데 검찰수사에 대한 부담 이미지실추 낙담 억울한 감정이 복합적으로 겹쳐 투신이라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