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 · 29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한나라당은 5 대 0으로 완패했다. 인천 부평에서는 집권당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반(反)시장적이고 허황한 GM대우 회생 공약을 남발하고도 패했다. 그 밖에 경기 시흥시장 선거에서 지고,7곳 지자체 의원 선거에서 단지 하나만을 건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당의 극적인 패배를 3년 반 뒤 한국 보수정권의 운명을 예고하는 전조(前兆)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 참패가 당내 갈등 때문에 되는 일이 없어서라는 이유는 성립하지만 간혹 엉뚱한 데서 원인을 찾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지난 주말 당내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 21'의 간사라는 국회의원은 "근본적으로 중산층과 서민에게 위화감을 주는 정치를 해왔기 때문이며,이념 편향적 밀어붙이기 식으로 국정을 운영해서 국민들의 피로감만 쌓인 결과"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의 전패가 민주당,민노당과의 포퓰리즘 선심경쟁에서 졌기 때문이란 말인가. 과거 500여만 표차로 국민의 선택을 받은 보수정권이 지금도 그때의 신념과 정체성을 간직했다면 국민이 이렇게 저버리겠는가.

필자는 이 결과를 그간 이명박 정부가 쌓은 보수정치의 이미지에 대해 국민이 심판한 것으로 본다. 이 정부는 집권 4분의 1의 기간이 지나도록 정도(正道)를 뚫는 정치를 보여주지 못했다. 작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 정부 · 여당 지도자들은 벙어리 맹인이 되어 그저 여론이 되돌아 올 때만을 기다렸다. 대선 때 약속한 정부조직 축소와 공기업 민영화는 식언(食言)한 바나 다름없고 청와대 조직은 오히려 확대됐다. 노무현 정권이 친 대못,삼불(三不) 교육정책,공공기관 이전,행정도시,기업-혁신도시,기타 좌파정권의 명백한 오류를 이때까지 하나도 혁파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한나라당 정권은 결단력과 추진력이 꺾이고,무원칙-무신념의 보수정부라는 이미지를 쌓았다. 정권이 숙제를 미루고 정면대결을 피하고 시류만 살피는 동안 좌파 척결을 열망하던 지지자들의 속은 타고 더 이상 이 정부에 기대와 신뢰를 두어야 할지 의심하게 됐을 것이다. 보수가 집권하니 비겁하고 소극적인 보수의 본성이 그대로 노출됐다. 좌파는 신념의 사나이들이라 생사를 걸고 몸을 던져 일전을 불사한다.

노무현 정권이 독선이건 독단이건 대못 박던 모습을 보라.비록 단기간이었지만 노 정권은 좌파들에게 꿈과 열망을 제공했다. 이 정부는 그 지지자들에게 무엇을 해 주었는가.

이 정권의 목적 상실과 권력 다툼은 보수정부의 정당성을 추락시켰다. 법과 정부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공권력이 사회적 약자의 압제자라는 공격만 받게 했다. 보수집권층 자신이 기회주의와 당파적 처신으로 '보수'의 가치를 절하시키는 데 그 지지자들이 이를 결사적으로 지킬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겠는가. 따라서 이번에 보수에 대한 염증,보수정권에 대한 혐오가 여당의 일패도지(一敗塗地),한번 패해 간과 뇌가 땅을 도배하는 패배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당의 시인 두보는 '전출새(前出塞)'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활을 당기려면 강궁을 당기고,화살을 쓰려면 긴 것을 쓰자[挽弓當挽强 用箭當用長] 사람을 쏘려면 말부터 쏘고,적을 잡으려면 왕부터 잡자[射人先射馬 擒賊先擒王]"

지금 한나라당 권력자들은 국민이 넘칠 만큼 보급해준 화포를 자기들끼리 쏘아대는 형국이다. 이들이 지금 적전분열하고 기회주의적 처신을 할 때인가. 포격대상은 행정도시,미디어 법,MBC 등 좌파정권을 상징하는 왕대못과 그 보루다. 그 공격의 선두에는 바로 지금의 대통령과 차기 대선후보가 될 사람들이 서서 당당히 국론을 이끌고 야당의 공격에 맞서야 한다. 국민은 이들을 보고 보수정권에 표를 주었고 앞으로도 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