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12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007년 6월 말 받은 돈 100만달러는 "노 전 대통령이 아니라 권양숙 여사가 빌린 돈"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왜 돈을 받은 것은 인정하면서도 받은 사람이 노 전 대통령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일까.

'노무현 게이트'의 소방수역을 자임하고 나선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날 "권 여사가 받은 것이라고 밝히고 노 전 대통령이 사과까지 했는데 왜 자꾸 노 전 대통령이 직접 부탁해서 받은 것처럼 보도되는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노 전 대통령이 100만달러를 보내라고 먼저 요구했고,노 전 대통령이 돈을 받은 이후 감사 인사까지 했다"는 박 회장의 진술을 검찰이 확보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직후의 반응이다.

문 전 실장은 "박 회장의 진술이 진실한 것인지 믿을 수 없다. 왜 그런 식으로 터무니없는 진술을 하는 것인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검찰 수사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게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드러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문 전 실장이 이처럼 노 전 대통령의 관련성을 재차 부인하고 나선 것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 처리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 측이 100만달러를 받은 시점은 재임 기간 중이다. 재임 기간에 돈을 받은 것은 명백한 범법행위다. 검찰이 구체적인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의 직무 범위가 넓은 만큼 포괄적 뇌물죄 적용이 가능하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에 소환될 뿐만 아니라 구속 수감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권 여사가 노 전 대통령 몰래 돈을 받았다면 노 전 대통령을 사법처리할 근거가 사라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이 아니라 권 여사가 받았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조카사위 연철호씨가 박 회장으로부터 받은 500만달러에 대해 "퇴임 이후 알았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퇴임 이전에 이 사실을 인지하고,그 돈 중 일부가 아들 건호씨 등에게 흘러들어간 흔적이 포착되면 노 전 대통령은 포괄적 뇌물죄로 사법처리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문 전 실장은 이날 "500만달러는 노 전 대통령의 것도,건호씨의 것도 아니다. 건호씨가 연씨와 함께 만나거나 움직이거나 한 사실이 있을지는 몰라도 500만달러와 직접 관련은 없다"고 부인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