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예상치 못한 막간극이 진행됐다. 민주당 의원들이 김수정 서울지방경찰청 차장을 참고인으로 불러 놓고 용산 참사와 관련한 경찰의 책임을 추궁한 것이다. 참사 발생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이었던 원 후보자의 사건 관련성을 묻겠다는 이유였지만 의원들은 경찰을 추궁하는 것에 질의 시간을 상당 부분 썼다.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건물 내부에 시너 60통이 있는지 알았으면서 하루 만에 진압을 개시했다. 국민이 적(敵)인가"라고 공격했고 같은 당 박지원 의원은 "차장의 답변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용산 참사에 대한 경찰 상대 청문회를 하고 있는 건지,국정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하고 있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사회를 보던 최병국 정보위원장이 "후보자 검증이라는 인사청문회의 취지에 맞는 질문을 해 달라"고 자제를 당부했지만 의원들은 막무가내였다.

여당 의원들도 크게 나을 게 없었다. 지난 9일 진행된 현인택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앞다퉈 '총알받이' 역을 자임했다. "현 정부의 통일 정책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적임자"(윤상현 의원)라며 후보자를 두둔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지난 정부에도 비전문가가 통일부 장관에 임명된 사례가 많다" "남북관계 경색은 남한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언제나 있던 일"이라면서 야당의 공격 차단에 안간힘 쓰는 대목에선 안쓰러운 생각조차 들었다. 인사청문회가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자리인지 후보자에 대한 일방적인 감싸기 자리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청문회에 임하는 후보자들의 자세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현 후보자는 남북 관계의 구체적인 해법을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하나같이 "진정성을 갖고 열심히 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원 후보자는 토지 매입 관련 부인의 의혹에 대해 "나도 잘 모르겠다"며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일단 이 자리만 피하고 보자는 식이었다.

장관 인사청문 제도가 도입된 지 4년째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도가 안정화되기는커녕 도입 당시의 취지마저 퇴색해 가고 있다. 청문회 무용론이 다시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