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뉴욕 NCAFP 회의서 리근-자누지 탐색전
"北, 美정권교체기 북.미관계 추진력 유지에 관심"
그레그 "북.미관계 변화 폭 책임자따라 달라질 것"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버락 오바마 당선인의 대북정책 방향이 비상한 관심을 끄는 가운데 오바마 측과 북한 정부 대표단과의 첫 만남이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이뤄졌다.

북핵 검증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 중인 북한 외무성 리 근 미국국장과 오바마 진영의 한반도 정책팀장인 프랭크 자누지는 7일 전미외교정책협의회(NCAFP) 주최 한반도 전문가 회의에 함께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윈스턴 로드 전 동아태차관보, 스테이플턴 로이 전 주중 대사, 도널드 자고리아 헌터대 정치학과 교수,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대사, 또 리 국장과 북핵 협의를 한 성 김 미 국무부 북핵특사 등이 참석했다.

그러나 관심은 차기 미국 정부에서 한반도 문제를 총괄할 것으로 알려진 자누지 팀장과 리 국장이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첫 접촉에서 어떤 대화를 나눴는 지에 쏠렸다.

리 국장이 미 대선이 끝난 직후 미국을 방문한 것은 북한이 오바마 정권의 탄생에 기대감을 표시하며 북핵문제를 북한과 미국 양자 간 구도로 만들기 위한 탐색 차원이 아니겠느냐는 분석과 오바마 측의 대북 정책에 관한 입장을 시사할 만한 대화가 오갈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이날 정오부터 4시간여 동안 진행된 NCAFP 회의는 철저히 비공개로 이뤄져 자누지와 리 국장의 구체적 발언은 확인되지 않았다.

NCAFP 관계자는 "지난 6년동안 북.미 간 비공식 채널로 활용돼 온 이 회의는 내용을 전혀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면서 "이는 회의 참석자들이 솔직하고 자유로운 토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라고 말했다.

리 국장은 이날 회의장 밖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의 질문에 일체의 대답도 하지 않고, 준비돼 있던 승용차를 타고 떠나버렸다.

리 국장보다 1시간 가량 늦게 나온 자누지 역시 "주최 측에서 브리핑할 것이다.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 한 채 자리를 떴다.

성 김 특사 또한 "미국과 북한 간 관계 개선을 위한 좋은 토론이었다"면서도 "토론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며 말문을 닫았다.

하지만 이들의 표정은 모두 밝았다.

이날 토론회 직후 주최측이 마련한 브리핑 자리는 구체적으로 참석자들의 발언을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포괄적으로 이날 토론 내용을 가늠케 해 주었다.

자고리아 교수는 회견에서 "오늘 회의가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이뤄졌다.

조심스럽지만 낙관적이었으며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자고리아 교수는 "장기적인 북.미 관계 정상화 전망을 포함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검증 문제뿐 아니라, 차기 행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인물들과 북한 정부 관리들을 소개하는 자리도 겸한 것이었다"고 말해 이날 회의가 북 측과 오바마 차기 정부 간 비공식 접촉 자리였음을 재확인했다.

특히 자고리아 교수는 "북한 측이 가장 관심을 보인 것은 부시 행정부와 새로운 오바마 행정부간의 정권이양기간 동안 `계속성'을 갖고 협상을 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며 북측이 정권교체기의 북.미 관계에 대해 우려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다시 말해 "북한은 향후 미국 현 정부와 새 정부 간 정권 교체기 동안 미국과의 관계에서 모멘텀(추진력)을 유지하길 희망했다"고 말했다.

그레그 전 대사는 "미국 차기 정부와 북한이 비공식적 대화를 계속 갖는 것이 바람직하며, 또한 아직 오바마 행정부의 주요 관리들이 임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양 측은 좀 더 기다려야 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레그 전 대사는 오바마 정부가 들어설 경우 대북 정책에서 큰 변화가 있을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누가 주요직에 임명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고리아 교수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부시 행정부로 넘어갈 당시 양측은 근본적으로 대북 문제에 대한 견해차가 커 매우 어려운 시기를 가졌지만, 이번은 다르다"며 "부시 정권 8년 가운데 초기 6년은 북한과의 대화가 어려운 시기였지만, 마지막 2년은 많은 대화가 이뤄졌다"며 현 정부와 차기 정부간 순조로운 정권교체가 진행될 것임을 시사했다.

앞서 리 국장은 6일 북핵 협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미국의 여러 행정부를 대상(상대) 해 왔고 우리와 대화하려는 행정부, 우리를 고립하고 억제하려는 행정부와도 대상했다"며 "우리는 어느 행정부가 나와도 그 행정부의 대조선 정책에 맞게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해 오바마 차기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펴도 대응을 준비가 돼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러나 평소 북.미 접촉시 극도로 발언을 자제해 왔던 북 측 대표가 `오바마 당선에 관한 의중'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이 건 답을 해야 될 것 같다"며 이 같이 밝힌 것은 북측이 오바마 정권과의 직접 대화에 큰 관심을 갖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자, 은근한 차기 미 정부에 대한 대화 압박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리 국장과 전날 만찬회동을 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도 "북.미 간 현안이 오바마 정부로 제대로 인수인계되는지 (북측이) 확인하고 싶어해, 완전한 의사소통이 되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했다"고 밝혀 북한의 관심이 현 정부 대화 채널이 아닌 차기 정부와의 새로운 관계 형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시사했다.

(뉴욕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kn020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