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 포연이 피어난 지 20일로 3년이 됐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축출로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신속한 재건사업이 이뤄져 친미정권이 창출되리라는 당초의 기대는 보기좋게 빗나갔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라크의 혼란상은 이 순간에도 '진행형'이다. 우리나라는 거스를 수 없는 한미동맹이라는 명분속에 파병이라는 대역사를 시작했다. 외교적 관계도 돈독하지 못했던 이라크와의 관계는 사실상 그렇게 시작됐다. 2003년 3월20일 미국의 바그다드 공습으로 이라크전이 개시된 지 한 달만에 우리 정부는 공병.의료부대인 서희.제마부대를 이라크 중남부 나시리아에 파병했다. 이어 그 해 9월 미국은 우리 정부에 대규모의 전투병을 파병해 줄 것을 요청했고 고민을 거듭하던 정부는 결국 비전투 병력 3천600명 파병을 결정, 2004년 2월23일 역사적인 자이툰부대가 창설되기에 이르렀다.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나 모술 지역 파병이 유력했으나 계속되는 테러로 비전투부대가 주둔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파병지는 쿠르드지역인 아르빌로 최종 낙점됐다. 결코 인명피해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국민의 염원에다 국내의 정치적 역학 관계 또한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런 결정이 미국, 영국에 이은 제3의 파병국임에도 이라크에서 실익을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일각의 비판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서희.제마부대를 흡수한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자이툰부대는 아르빌의 황량한 초원에 둥지를 틀고 학교 건설과 상.하수도 설치, 현지인에 대한 직업교육 등 전쟁의 여파로 직.간접으로 폐허가 된 이 지역의 재건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당초 외지인, 그것도 외국군의 주둔을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봤던 지역민들은 자이툰부대원들의 진심어린 민사작전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산(山) 뿐이던 쿠르드인의 친구에 한국군이 더해졌다"는 말이 생길 정도다. 지역안정화를 위한 치안유지활동의 일환으로 이라크군과 경찰 1천155명을 교육시켰고 현지 민병대인 제르바니 경호대대 막사, 경찰서, 사격장을 신축했다. 자이툰병원을 운용해 3만명이 넘는 환자를 돌보는 한편 현지 의료진 교육에도 열을 올렸다. '그린엔젤'로 불리는 민사작전을 통해 24개 마을, 6개 기관에 대한 진료와 이발, 먹거리 제공 등의 활동으로 현지인과의 친화도를 높였다. 기술교육센터를 운용해 지금까지 현지인 606명이 수료했고 대부분 고임금 노동자로 취업, 센터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자이툰부대로 인한 현지인 고용도 고정직 414명, 일용직 3천500명에 이른다. 이라크인들의 국기인 축구대회를 개최하고 우리의 국기인 태권도를 전파했다. 이라크전 3년간 그 위세가 움츠러들기만 한 미군의 위상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저항세력 소탕에만 열을 올렸던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조차 미군을 비롯한 다국적군에 한국군이 벌이고 있는 민사작전을 도입할 것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상태다. 자이툰부대가 이라크의 자립기반을 갖춰주기 보다는 자국의 구미에 맞는 정권을 세우고 저항세력 제거에만 몰두해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미국을 일깨우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라크전의 정당성에 금이 가고 파병군에 대한 테러 개연성이 도사리고 있는 현실은 자이툰부대가 이 같은 '성공'에 마냥 안주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자이툰부대 주둔지인 아르빌이 비록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하더라도 역시 전쟁터 중 한 곳임에는 틀림없고 개전이래 지금까지 이라크 주둔 미군 가운데 2천300명이 숨지고 1만7천여명이 부상한 상황을 보면 안전을 장담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개전 당시 35개국에서 올해 26개국으로 줄어든 다국적군도 철군 논란이라는 불길에 쏟아붇는 기름과 같다. 게다가 내전의 현장으로 바뀌어버린 이라크의 급박한 상황은 이를 더욱 부채질할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때문에 작년 6월 이후 단 한 건의 테러도 발생하지 않고 부대내 사건.사고도 거의 없어 '영창'이 텅 비어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모범부대인 자이툰이라 할지라도 종파와 종족간 갈등으로 사실상 내전상태인 대다수 이라크 지역과 독자적 행보를 보이고 있는 쿠르드 자치지역의 잠재된 갈등을 항상 염두에 둬야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와 다국적군사령부(MNF)측은 이라크 경찰이 치안을 담당하고 치안업무를 이라크 내무부가 전담하는 2008년은 되야 완전 철군 여부를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우리 정부는 다가오는 4월 자이툰부대 4진 2차 병력 교대시부터 1천여명에 대한 단계적 감군에 착수, 연말까지 2천200명 수준으로 주둔병력을 하향 조정한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honeyb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