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현(洪錫炫) 주미대사는 14일(현지시간) 자신의 재산공개 내역에 관해 설명하면서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아 몰랐거나 ▲무관심했거나 ▲죄의식이 없었거나 ▲불가피했던 경우 등 이유로 부동산가운데 일부 위장전입 사례가 있다며 "국민께 죄송하다"고 여러차례 사과했다. 홍 대사는 특히 이헌재(李憲宰) 전 경제부총리 등의 사례를 의식한 듯 "전ㆍ후 잣대가 다를 수도 있고...재산공개를 둘러싸고 개인이 어려움을 겪은 사례도 여럿 있었다"며 "그러나 사회가 크게는 옳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며, 개인 문제는 큰 흐름 속에서 받아들여져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신문이 조사에 들어가겠지만"이라고 말하는 등 자신의 재산공개가 초래할 파장의 크기를 예감하며 `폭풍속으로' 들어갈 채비를 하는 모습이었다. 홍 대사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모두 발언을 했다. 『 정주영 회장 별장 문제가 언론에 그렇게 크게 취급될지 몰랐다. 언론계에 오래 몸담았었는데, 역시 언론의 생리는 몸으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저를 아끼는 많은 분들이 나의 공직 진출을 권하지 않았던 여러가지 이유도 어떤 의미에선 발가벗고 길에 나서는 어려운 심정에 대한 이해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크게 봐서는 옳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재산공개를 둘러싸고 개인이 어려움을 겪은 사례가 여럿 있었다. 제 경우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많은 국민이 공직자가 왜 재산이 이렇게 많으냐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사람이라는 게 출발점은 누구나 (달리) 갖고 있는 것 아니냐. 제가 살아오는 과정에서 공ㆍ과도 있고, 그 전ㆍ후 잣대가 다를 수도 있으나 큰 흐름속에서 받아들여져야 할 문제다. (재산 내역의 대강을 설명한 뒤) 몇가지 죄송한 말씀을 드릴 것은 내가 1972년3월 미국에 와서 1983년 3월 귀국하기전, 선친이 경기 이천군 율면 율포리에 4만2천평을 79년-81년 사이에 구입했는데, 그 가운데 포함된 30%가 농지였다. 요즘 얘기로 전입 사례다. 또 귀국 후 그 땅 한가운데 매입하지 못했던 3천평을 추가로 작고한 부친이 구입했는데 내 처 이름으로 했다. 그것도 전입 케이스다. 나중에 듣기로 부친은 그땅에 조그만 집을 짓고 사실 생각도 있었던 것 같고, 증조부로부터 물려받은 선산이 개발 예상지에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비해 가족묘지용 대비도 생각한 것 같다. 내가 장손이어서 모두 내 이름이나 처, 어머니 이름으로 했다. 나는 그 땅 구입을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재산 등록을 위해 관리자가 점검하면서 내가 워싱턴 살던 시절 구입한 것이어서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가 얼마전 한 필지가 내가 귀국 후 산 것이라고 알려왔다. 』 --선산은 어디에 있나. ▲정주영 회장 별장을 사면서 재미있는 인연이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본디 선산의 돌산 뒷면이 채석장으로 개발되고 있었기 때문에 뒷통수를 맞는 것 같아 매입하기 위해 알아보니 현대건설이 주인이었다. 결국은 못샀다. 선산이 있던 남양주시 옥정동이 지난해 신도시 개발지로 발표돼 선산을 지금 문제의 소지가 있는 율포리 땅으로 옮겼다. 내년 초 보상금을 다 받을 것 같다. --문제의 땅의 한 필지 매입은 알고 있었나. ▲믿거나 말거나 나는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으니 말씀하셨을지는 모른다. (땅이) 내 재산의 중요 부분은 아니다. 공시지가로 몇억, 시가로 15억-20억이었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재테크할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증여세는 다 냈나. ▲1989년 산지로 된 부분은 큰 아들(홍정도)에게 옮겨놓으면서 몇백만원의 증여세를 냈다. 농지 부분은 (명의를) 옮길 수 없다. --남양주 신도시 지역 땅은 어떻게 물려받았나. ▲증조부가 2만평을 갖고 있다가 아버지에게 상속했고, 그것이 내가 서너살 때이던 자유당 시절 나에게 물려졌다. 상속세도 없던 시절이다. 이어 60년대말 내 이름으로 또 1만평을 사셨다. 3년전 그곳에 길이 나면서 2천500평이 수용돼 보상을 받았다. --농지는 현지에 살지 않으면 소유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들 명의로 바꿀 때는 알았나. ▲알았다. 관리인이 농지는 못 넘긴다고 했다. --그때가 처음 안 때인가. ▲그전에도 알았는데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게 더 솔직한 얘기다. 아버지가 여러번 그 땅이 내 이름으로 돼 있다고 거론했으니. 그러나 무슨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공무원도 아니었고, 별 관심이 없었다. 어떤 면에선 죄의식도 별로 없었던 것 같고. 국민께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 --장남에게 산지를 넘길 때 가족묘지로 쓸 생각은 아니었지 않나. ▲아니었으나, 어차피 장손으로 넘어갈 것이었고, 아버지로부터 가족묘지 필요가 생길 수 있다고 들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아들이 열 서너살 때였다. 율포리 땅을 아버지가 나나 내 처 이름으로 살 때 증여세를 낸 것으로 안다. 자금출처를 조사했을테니까. 그 땅을 살 때 필지 별로 나나 내 처나 어머니 이름으로 나눠서 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임명권자가 대사로 임명할 때 이런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나. 조용하게 넘어갈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른) 시작점을 갖고 가는 것 아니겠나. 저는 나름대로 사이클(기복)은 있겠지만, 혜택받은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경제환경에서 800억원의 재산을 발표하는 것 자체에 많은 국민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가 공직에 나올 때 우리 사회가 움직여 가는 큰 방향을 긍정적으로 본 것이고, 이런 문제점에 대해서도 떳떳이 밝힐 것은 밝히고 사과드릴 것은 사과드리자는 마음에서 이 자리에 나왔다. --선친이 땅을 살 때 주소를 옮긴 것인가. ▲내가 외국에 있을 때 내 주소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거기(땅 주소지)에 옮겨도 되는 것인데, 옮겼다가 뺐으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귀국 후엔 아버지와 같이 주소가 돼 있었다. 제 처 주소가 옮겨졌으니 그 3천평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 명의로 산 것은. ▲그것은 없는 것 같다. --선친이 홍 대사 명의로 샀다가 판 것은. ▲이 상황에서 이런 얘기가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가 부동산과는 인연이 멀다. 아이들 좋은 학군 보내겠다고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에 8년간 살았는데 상투를 잡아 14억5천만원에 샀다가 1억원을 들여 수리하고도 8년 후 11억원에 팔았다. 내가 사서 돈을 남기고 판 땅도 없고, 아버지가 내 이름으로 사서 판 땅도 없다. 제 환경이 땅을 사고 팔아 이익을 남겨 재산을 증식할 필요는 없었다. --삼성전자 주식 매입 과정에서 특이한 사항은 없나. ▲그 주식은 지난 번 증여세를 다 냈다. 이번에 발표할 사항은 아니나, 세무 당국에 세금 낸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매년 참 많이 내왔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정주영 회장 별장 건이다. 최종 단계에서 문서를 보니 3만평 가운데 2천평에 농지가 있어 굉장히 고심했다. 2천평 땅은 명의자인 정몽헌 회장이 그대로 갖고 있을 수 없겠느냐고 타진도 해봤다. 결국 2만8천평 부분은 내 이름으로 사고, 2천평 부분은 어머니 이름으로 샀다. 이 부분도 여러분이 볼 때... 이 정도 외에는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내에선 더 없다. 처음 지목의 땅들은 내가 없을 때 일이지만, 이 2천평은 내가 알고 한 부분이니까... 농지가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보니 길 부분이 지목만 농지로 돼 있고 잔디밭이나 시설이 많았다. 사실은 내가 농지로 회복한 셈이다. 3년에 걸쳐 자연을 복원해 왔다. 5월쯤 완공되면 어머니가 거기서 상당한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구입 가격은. ▲2001년 5월말인데, 종합주가지수가 몇년중 최하였다. 처음에 정 회장이 내 놓은 게 내가 산 돈의 3배에 내놨다가 안 팔려 절반으로 깎았다가 그래도 안 팔려 내가 산 것이다. 당시 삼성전자 주가가 13만원이었다. 지금보면 싸지만 당시 어려운 상황에선... --임명 때 논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아직 없는데. ▲전혀 없었다. 대통령도 제가 재산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많은 국민이 특히 경제가 몇년째 어려운데 느끼게 될 상대적 발탁감에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를 부탁드린다. --그 땅들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언제부터 생각했나. ▲내가 둔한 점인데, 문제가 되리라고 별로 생각 못했다. 문제될 줄 알았으면 특히 가족묘지로 하고 있는 땅은 얼마든지 처분할 수 있었다. 많은 국민이 거북하게 들으실 수 있지만, 제 재산 전체 비중의 1-2% 밖에 안된다. 이것을 팔아 이득보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3천평 문제는 알고난 뒤 좀 당혹스러웠는데 그것은 내가 밝히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나 생각했다. --1989년 어린 장남에게 재산을 넘겼는데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제가 어려서부터 장손으로서 제사를 모시는 책임을 들어왔고, 어렸을 때 내 이름으로 아버지가 땅을 사주셔서 내 큰 아이에게 넘길 때도 그런 생각이 별로 없었다. 아이에게 돈을 벌어주고 싶었으면, 정보를 얻어서 땅값 오를 데를 사줬을 것이다. 농지 부분은 어린 아이가 위장전입 소리를 들어선 안될 것 같아 옮길 수 있는 부분만 증여세를 내고 넘겼다. --물려받은 땅 외에 재산은 상속받은 게 많나 번 게 많나. ▲상속받아 경제가 커지면서 커진 것이다. 1997년 환란전 삼성전자 주가가 2만5천원이었는데 지금은 50만원이다. y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