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와 민주노동당 김혜경(金惠敬) 대표,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 등 야당 지도부는 23일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으로부터 김선일씨 피랍.살해 사건과 석방협상의 경위 등을 보고 받는 자리에서 정부 당국의 대응 부재를 호되게 질책했다. 최영진(崔英鎭) 외교부 차관은 여당인 열린우리당 긴급의총에 참석해 비교적 차분한 분위 속에서 상황을 보고한 반면, 반 장관은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을 만난데 이어 한나라당, 민노당, 민주당 등 야당 지도부를 차례로 만나 사태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야했다. 박 대표는 국회 한나라당 대표실에서 반 장관을 만나 "가나무역 사장이 이라크 주재 대사관에 피랍사실을 알리지 않고 자체 구출 노력을 한 것은 이해가 안된다"면서 "연락망이 제대로 구축이 안돼 있었기 때문이 아니냐. 대사관에도 큰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민노당의 분위기는 한층 `험악'했다. 김혜경 대표는 "협상 당시 고려해 보겠다며 유보적 입장을 취할 수도 있었는데 정부가 파병철회 입장을 고수하는 바람에 그 사람들이 김선일씨를 죽였다"고 주장했고, 천영세(千永世) 의원단대표는 "(김씨가) 행방불명된지 3주가 되도록 공관은 뭘했느냐"며 "그런 곳에 3천명이나 더 보내겠다는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천 대표는 심지어 반 장관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정부에서 누군가 책임져야 되는 것 아닌가. 정부의 존립 이유가 뭔가"고 묻고 "(김씨는) 일반회사 직원인데 대사관 직원이나 장관 아들이었다면 이렇게 낙관적으로 대응했겠느냐. 대충 덮고 떼우고 하면 되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반 장관은 "워낙 짧은 시간에 이런 일이 일어났지만 정부는 최대의 접촉선을 가동했다"며 아랍권 국가 장관들과 종교지도자를 접촉한 내용을 설명한 뒤 "국제사회가 우리를 보는 눈이 있고 테러근절에 동참하는 대의 명분도 있다. 정부로서는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 할 때도 있는 만큼 이해해 달라"고 호소했다. 민주당 한 대표도 반 장관을 만나 "정부가 김씨 구출을 위해 노력했다는데 어떤 사람을 통해 했는가. 실체가 있는 사람인가"라고 묻고 "(정부가) 무역회사 사장이나 경호업체보다 못한데 그런 정부의 무능을 보고 있는 국민이 어떻겠느냐"고 따졌다. 계속되는 질책에 반 장관은 "면목없다", "할 말이 없다"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야당 지도부의 질책은 이번 사건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대응을 질타하는 국민여론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 정부와 정치권에 여론의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정치권이 외교부에 화살을 돌리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서울=연합뉴스) 맹찬형 이승우기자 mangels@yna.co.kr lesl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