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 올해 최대 화젯거리로 꼽힌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다. 노 대통령은 탈(脫)권위와 탈(脫)격식,무(無)제한과 무(無)구속의 거침없는 언사를 구사했다. 때로는 상식을 깨뜨리는 신선함을,때로는 "과연 대통령의 언사인가"라는 놀라움을 주는 말도 많았다. 다양한 표현과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발언은 종종 화젯거리를 넘어 "국민노릇도 못해먹겠다"는 식의 유행어까지 만들어냈다. 그러나 노 대통령 스스로는 "엄살 좀 떨어본 것"이라며 쉽게 넘어갔다. 노 대통령은 지난 5월 한총련의 광주 기습시위 사태를 '사과'하러온 현지 재야단체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발언을 한 후 10월10일 "재신임을 받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최도술씨 등 측근비리로 "눈앞이 캄캄했다"며 한 말이다. 재신임 발언이 결론나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 14일엔 "불법 대선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이 넘으면 대통령직을 걸고 정계에서 은퇴하겠다"고 말했다. 4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한 말로 재신임 발언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이었다.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노 대통령은 5일 뒤 노사모 등 네티즌 지지그룹의 당선 1주년 기념 야간집회에 나가 "시민혁명은 계속될 것"이라는 발언으로 정치권을 들끓게 했다. 바로 그날 춘천의 관광산업보고회에서 "불법자금을 포함해 대선자금은 3백50억∼4백억원이 넘지 않는다"고 해 야권의 십자포화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정치권을 겨눈 노 대통령의 '언어정치'는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 찍는 것은 한나라당 돕는 것"이라고 말해 세밑까지 정치권을 달구고 있다. 지난 6월13일 '세무공무원들과의 대화'에서는 "(내가) 1급수에서 살아온 열목어나 산천어처럼 깨끗한 대통령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2급수,3급수 헤엄치며 진흙탕 건너 지뢰밭 건너서 정권을 잡았다"고 했다. 이에 앞서 3월 검사와의 대화에선 "이쯤되면 막가자는 것"이라는 말이 화제가 됐다. 정치영역 밖에서도 독특한 화법은 많았다. 세무공무원 간담회에서 "(완장 차고 투기단속 나서면) 쪽팔리죠"라고 직설적 표현을 썼다. 민원담당 공무원과의 대화에서는 "'개새끼들 다 잘라야 돼'라고 한다"고도 했다. 노 대통령의 입에선 '개판''쪽수''통박''맛 좀 볼래''조진다'는 등 시정의 정제되지 않은 용어들이 심심찮게 튀어나왔다. 방송에 출연,구속된 안희정씨를 '동업자'라 불렀고,측근인 이기명씨 건에서는 "선생님이 당하는 고초를 생각하면 잠을 못이룬다"는 내용을 인터넷에 띄웠다. 한편 지난 5월 방미 때는 재계 총수들과의 간담회에서 "제가 절반만 하면 여러분이 절반을 할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며 껴안기에 나섰다. 이어 6월1일 삼계탕집에서 재회동한 재계 총수들에게 "노사문제로 국가경제가 희생돼서는 안되고,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것도 안된다"고 평가한 이래 "민주노총은 더이상 노동단체가 아니다"라는 발언에 이르기까지 노사문제를 평가하는 말도 자주 했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