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공약인 '책임총리제'가 시험대에 섰다. 지난 2월27일 취임한 고 건(高 建) 국무총리는 대구지하철 참사, 이라크 사태 대책 등 굵직굵직한 사안을 진두지휘, 총리의 위상을 높여왔다. 하지만 논란이 일고 있는 기자실 통폐합과 직속기관인 국무조정실의 차관급 직제 신설 등 당면현안에 대해선 자신의 의중을 반영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에 앞서 새정부 조각인선 과정에서 이영탁(李永鐸) 국무조정실장외에는 자기사람을 입각시키지 못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달 경제5단체장과의 간담회에선 "경제상황을 감안해 재벌의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일제조사를 유보, 연기하겠다"고 했다가 시민.사회단체 출신인 강철규(姜哲圭) 공정거래위원장으로부터 "개혁엔 속도조절이 있을 수 없다"고 반박당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총리실 주변에선 역대정권보다 청와대 직제가 커진 상황에서 고 총리가 기자실 통폐합과 차관급 직제 신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향후 책임총리제 도입 여부의 가늠자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기자실 통폐합 = 정부 중앙청사내 기자실을 폐쇄하고 청사 옆 별관에 '청사통합브리핑룸'을 만든다는 국정홍보처의 방안이 고 총리의 심기를 건드렸다. 조영동(趙永東) 홍보처장은 지난달 20일 고 총리에게 "청사내 기자실을 폐쇄하는 대신 청사 본관에 통합브리핑룸과 기사송고실을 설치하겠다"고 보고했다. 당시 고 총리는 "각 부처가 행정정보공개 조례 제정 등을 통해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장.차관 등이 직접 나서 브리핑해야 한다"고 주문할 정도로 알권리 보장을 위한 주도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지난 11일 홍보처가 총리실과 사전협의없이 통합브리핑룸을 청사 별관에 설치하겠다는 방안을 추진하자 고 총리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고 총리는 "개방적 취재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좋지만 그에 앞서 행정정보의 공개를 확대하고 정책입안 절차의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당초 취지를 재차 강조하면서 홍보처 방안의 백지화를 지시했다. 이영탁(李永鐸) 국무조정실장도 "청사 통합브리핑룸은 별관이 아닌 본관에 설치될 것"이라고 못박고 "이는 고 총리의 단호한 의지"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조 처장은 14일 오후 고 총리에게 기자실 운영방안을 재차 보고할 예정이어서 고 총리의 의중이 반영될지 관심이다. 이와 관련, 조 처장은 "브리핑룸을 청사 본관에 설치한다는게 홍보처의 입장"이라며 "이를 위해 공간(본관) 300평을 요구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불가피하게 별관 설치를 대안으로 모색해본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차관급 직제 신설 = 대통령직 인수위도 공약했던 국무조정실 차관급 직제 신설방안이 고 총리 취임 2개월째 이렇다할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당초 총리실은 국무조정실장 아래에 경제와 사회.문화를 각각 담당하는 차관급 직제 2자리를 신설하려 했으나 고 총리 취임 이후 우선 한자리를 먼저 신설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고 총리는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해선 직제신설이 늦어진다고 판단, 대통령령을 통해 `수석조정관(차관급)'을 신설키로 하는 등 의욕을 보여왔다. 특히 수석조정관 자리를 재경부에서 차지할 것이란 소문이 나돌면서 국조실 직원들이 내부 홈페이지에 70여건의 글을 올려 항의하는 소동이 일자 고 총리가 "걱정말라"며 진정시켰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최근 청와대의 한 수석실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을 통해 직제를 신설하는게 맞다"고 제동을 거는 바람에 고 총리는 차관 직제는 물론 1-3급 간부들에 대한 인사 등 조직.인사 정비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서울=연합뉴스) 이강원기자 gija00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