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측이 2억달러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 연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청와대의 대국민 직접해명을 요구하며 압박에 나서고 있지만 청와대측은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양측이 이 사건의 '정치적 해결' 원칙에는 공감하면서도 절차와 방법을 놓고는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당선자측의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 내정자는 5일 기자들과 만나 "뭔가 해결의 장(場)을 마련하려면 청와대가 성심성의껏 한나라당과 물밑대화도 하고 이해도 구하고 애국심에도 호소하는 등 노력이 필요한데 그런 게 없다"면서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의 대통령 직접해명 필요성 언급에 대해 적극적인 동의를 표시했다. 유 내정자는 지난 3일에도 "박지원 비서실장과 임동원 특보가 나서서 야당을 납득시켜야 한다"고 말했고, 문희상(文喜相) 비서실장 내정자도 4일 "청와대가 가만히 있겠느냐"면서 "뭔가 구상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문 실장은 대통령의 직접해명 등에 대해 "여야 합의 이후 마지막 단계에서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면서 국회차원의 합의에 더 무게를 싣고 있지만 정국 상황에 따라 대통령의 직접해명 또는 특검 수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선자측의 이같은 입장은 현 상황이 청와대의 추가 해명이나 적극적 조치 없이는 풀리기 어렵다는 현실인식을 토대로 하고 있으나, 동시에 2억달러 대북 송금설에 대해 현 정부와 확실한 선을 긋겠다는 포석도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나라당 일각에서 이번 사안과 총리 인준이 연계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데 대해 유 내정자가 "이 건은 현정부의 일이지 새정부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펄쩍 뛴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청와대측은 `국익과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김 대통령의 추가해명 여부 등에 대한 명확한 입장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박지원 실장은 4일 "현대는 개성공단 등 7개 사업을 북측으로부터 30년간 보장받는 계약을 했다. 정부에서는 북한에 돈을 주지 않았다"고 대북송금의 성격을 설명한 뒤 "현대상선의 대북송금 문제는 국익과 남북관계의 특수성 차원에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대통령은 이미 천명했다"고 말했다. 박선숙(朴仙淑) 청와대 공보수석도 5일 김 대통령 직접 해명론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만 답했다. 양측의 이같은 미묘한 입장차는 국익을 고려해 정치적 합의를 통해 사안이 매듭되길 원하는 청와대측과 새정부 출범전에 파문의 부담을 털어버리려는 당선자측의 시각차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서울=연합뉴스) 김현재기자 kn020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