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서해상으로 귀순한 순룡범(45.선장)씨일가족 등과 함께 입국했던 탈북 어선 기관장 리경성(32)씨가 3박4일, 81시간 30분가량 남한 체류 끝에 북측으로 되돌아갔다. 다음은 국가정보원과 경찰조사 내용을 기초로 재구성한 리씨의 남한 체류 3박4일. 리씨는 지난 17일 오전 3시30분께 평안북도 선천군에 있는 수산기지에 정박돼있던 선박 '대두 8003호'에서 당직근무를 서다 순씨 가족에 의해 배 어구창고에 감금됐다. 앞서 선장 순씨가 평소 고향인 충남 논산에 가고 싶어하는 아버지 순종식(69)씨의 뜻을 따라 지난 2000년 12월께 남쪽 삼촌 순봉식(55.대전)씨를 중국에서 만났고그 후 전 가족을 데리고 탈북하기로 결심한 줄은 꿈에도 모르는 상태였다. 순씨가 지난 6월 '대두 8003호' 선장으로 배치된 것 자체가 그가 탈북에 사용하기 위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민방위부 소속 외화벌이 부서인 '114 지도국' 지도원에게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불과 2년전 결혼해서 신혼의 단꿈에 부풀어있는 리씨로서는 이를 알 리 없었다. 평소 어로활동을 하다 남한 방송을 듣고 볼 기회가 없지 않았지만 '대통령 아들까지 구속 되다니 이 나라(한국)는 이상하구나'라고 생각하던리씨였다. 남한 방송에 나오는 뉴스나 '가족오락관', 일일드라마 '당신 옆이 좋아' 등을봤지만 남측이 너무 잘 사는 것으로 묘사돼 오히려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배는 어느덧 서해 공해상으로 나갔고 리씨는 난데없는 일에 놀라는 한편,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부모와 아내, 한살짜리 딸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기관장 없이 선장에 의해 하루쯤 달리던 배가 18일 오전 0시께 기관 고장을 일으키자 순씨 일가족은 리씨를 불러낼 수밖에 없었다. 고장난 기관을 수리하자 이번에는 다른 일가족과 함께 선실에 대기해야 했다. 배가 발견된 것은 같은 날 오후 6시30분께. 배는 어느덧 리씨가 가본 적도 없는인천 옹진군 울도 서방 17마일 해상에 다다랐고 남측 경찰이 다가와 수색했다. 남쪽에서 태어났다면 386 세대였을 리씨는 이날 나이가 비슷한 남쪽 해양경찰관강진구(33) 순경에게 "남측 방송 뉴스를 자주 보지만 남측이 너무 잘 사는 것으로묘사돼 다 믿지 못하겠다"며 "당신은 믿느냐"고 묻기도 했다. 잠시 후 인천항. 리씨는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가 부담스러웠고 자신의 운명이어찌될지 불안하기만 했다. 다시 서울로 옮겨진 뒤 관계기관 합동조사를 받으면서 리씨는 줄곧 북쪽에 가족이 있어 돌아가고 싶다고 주장했다. 물론 한 때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의지할 곳 없는 남쪽에 혼자 남을 수는 없었다. 결국 남쪽을 이해할 수 없었던 리씨가 선택한 것은 가족 곁이었다. 결혼한지 겨우 2년된 아내와 한살짜리 딸, 그리고 부모를 북녘 땅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충원기자 chungw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