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이 선제사격을 받고도 즉각 응사, 북한 경비정에 결정타를 먹이는 등 3년전 연평해전 처럼 완승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서해교전 발발 닷새째를 맞은 3일 군의 핵심 인사는 교전상황이 종료된 지난달29일 오전 10시50분께 느꼈던 군 지휘부의 분위기를 털어 놓았다. 전사 4명을 포함해 해군 승조원 24명이 사상했고 고속정 1척이 침몰되는등 `엄청난 타격'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지만, 실제 교전이 벌어진 25분 동안엔 우리측 피해는 경미하고, 오히려 북 경비정이 결정타를 받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결과론적으로 볼 때는 군 지휘부가 상황판단을 그르친 것으로 드러났지만, 당시 교전상황에서는 `오판'이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교전상황에 대한 현장보고가 부정확했던 점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남북 해군 양측이 집중적으로 교전을 벌인 지난달 29일 오전 10시25분부터 25분동안에는 해군 작전부대에서는 육안 관측을 통한 상황보고가 들어왔을 뿐, 우리측의인명 및 함정피해가 그렇게 컸는지는 전혀 몰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핵심인사는 "집중적으로 교전했던 25분 동안에는 북한의 선제공격과 우리 고속정, 초계함들의 대응사격 등으로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북으로 도주하는 북 경비정에서는 화염이 치솟은 반면, 피격된 우리 고속정의 경우 통신두절 외에는 육안으로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보고들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우리측의 대형 피해와 비교할 때, 중무장한 우리 초계함 2척이 신속히 움직여북 경비정을 `격침'시키지 않았는지, 그후 도주하는 북 경비정을 왜 끝까지 따라가격침시키지 않았는지, 오전 10시56분 해군 2함대사령관이 왜 사격중지 명령을 내렸는지 등을 놓고 비난여론이 거세지만, 교전당시에는 이미 충분할 만큼 북 경비정에타격을 주었고, NLL 이북으로 복귀했기 때문에 상황을 종료했다는 설명이다. 우리측 피해상황을 최초로 보고받은 것은 북 경비정 NLL을 넘은 오전 10시50분이었으며, 그것도 `몇명 다친 것 같다'는 수준의 피해보고였다는 후문이다. 국방부.합참 지휘부가 전사자 4명 등 사상자 24명과 고속정 침몰 등 극심한 피해규모를 보고받은 시점은 당일 낮 12시 가까이 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99년 연평해전에 이은 또 한번의 승전보를 기다리며 내심 자축까지 했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악몽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서울=연합뉴스) 이 유 기자 ly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