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순아, 미안하다" 28일 금강산여관 2층 홀에서 딸 필순(55)씨를 51년만에 다시 만난 오정동(吳鼎東.81)씨는 북받치는 감정에 말을 잊지 못했다. 오씨는 어느덧 주름 잡힌 딸의 얼굴을 마냥 쳐다보며 헤어질 당시 세살배기의잔상을 찾으려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아무리 과거를 추스르려고 해도 세월의 간극은 메워지지 않았다. 오씨는 "고모를 많이 닮았구나. 아니지 할아버지를 닮았어"라고 혼자 되뇌더니"그래 고모 얼굴이야"라며 피붙이를 끌어안았다. 황해도 옹진이 고향인 오씨는 51년 1.4후퇴 때 동생 관동씨가 국군으로 참전,전사하자 인민군의 보복이 두려워 야반도주했다. 오씨는 "며칠만 숨어있다가 되돌아올 생각으로 마누라와 널 놔두고 왔는데, 그길이 마지막이었다"고 울먹였다. 오씨는 "어머니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는 딸의말에 다시 한번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딸은 팔순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난 아버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영원히못만날줄 알았던 아버지를 되찾았다"고 즐거워했다. 맏딸 성옥(58)씨를 만난 이근택(李根澤.83)씨도 마찬가지였다. 황해도 성화군이고향인 이씨는 1.4후퇴 때 부인 조필례(80)씨가 딸 둘을 데려오기 힘들어 큰 딸 성옥씨를 큰 집에 맡겨두고 월남하면서 헤어졌다. 딸 성옥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 알고 살아왔다"면서 "함남에서 잘살고 있다"고 아버지를 위로했다. 이씨는 "너를 남겨두고 와 50년간 한을 안고 살아야 했다"면서 자신만큼 늙어버린 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딸 성옥씨는 "아버지 없이 살아오느라 힘들었지만 자식 넷을 잘 키웠다"며 손자손녀를 자랑했다. 이씨는 "네 어머니가 속초까지 왔었다"면서 부인 조씨의 안부를전했다. (금강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