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중 미군이 피란민인 무고한 양민을 전투기를 이용해 무차별 학살했음을 입증하거나 반증하는 문건은 노근리 사건 관련물을 포함해 최근들어 꽤 많은 숫자가 발굴됐다. 노근리 사건만 해도 이 사건 희생자의 유가족이나 생존자의 증언 말고도 이를명확하게 증명하는 문건은 이미 지난해 6월에 한국전쟁 발발 50주년을 즈음해 공개된 게 있다. 재미사학자 방선주 교수는 미 제1기갑사단 7연대 1대대가 '39.7-50.4'라고 일컫던 지역에서 북한군에게 노획한 문건 2종류를 비롯해 여러 자료를 공개한 바 있는데노근리임이 확실한 충북 영동의 한 철로 터널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사건을 담고있다. 원래 이 문건은 북한 인민군 제1군단 지휘부가 50년 8월2일 작성해 각 산하 부대에 돌린 것으로 미군이 영동의 철로 굴다리에서 민간인 100여명을 처형한 사실을 담고 있다. 이 문건은 "적(미국)은 지금 이 시각에 이르기까지 인민을 학살하는 용서할 수없는 만행을 자행하고 있다... 영동 부근의 한 터널에서는 약 100여명이 처형된 것을 발견했는데 아기들이 어머니 가슴에 매달려 있는 참상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광경이었다"고 적고 있다. 문건에는 또한 "(미군이) 민간인을 처형하는 방법으로는 낮에는 비행기의 기총소사로, 또 밤에는 포탄사격으로 자행되었다"라는 내용이 있다. 비단 노근리 뿐만 아니라 미군이 한국전쟁 중 다른 곳에서도 공중공격으로 양민을 학살했음은 다름 아닌 AP통신 미국 종군기자 S.M. 스톤이 1950년 1월30일 미국에있는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뚜렷하다. 스톤은 이 편지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우리(미군) 기총소사로 수백명의 피란민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대부분은 여자와 어린이입니다. 저들은 행길 곁에 기어가듯 죽어가고 있습니다"라고 미군 포격에 시달리는 피란민의 참상을 말하고 있다. 또 이런 장면은 인민군을 따라 종군한 월북작가 이태준의 로동신문 기사에도 실려 있다. 하지만 자료가 미군이 조직 명령에 따라 민간인 학살을 했음을 곧바로 입증하는 것은 아닐뿐더러 북한군에 의한 사실 왜곡 가능성도 있어 한계가 있다. 이런 가운데 노근리 사건을 특종보도한 AP통신 취재팀이 그동안 노근리 사건에 관련된 미정부 문건을 광범위하게 찾아낸 정리한 「노근리 다리 - 한국전쟁의 숨겨진 악몽'은 자못 의미가 크다. 우선 새로 보충한 문건 중에는 노근리 일대 피란민들에 대한 미군의 공중포격이미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우발적인 게 아니라 명령계통에 따른 행동이었으며 공중포격 또한 한 차례가 아니라 더 있었음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한 문건은 50년 7월26일 오후 6시40분 일본 이타즈케 공군기지를 이륙한미군 전투기 4대가 노근리인 용암리 남동쪽 3마일 지점을 폭격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번에 공개된 다른 문건들은 노근리 사건에만 국한하지 않고 한국전쟁 중 피란민 학살이 광범위하게 저질러졌음을 입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건은 노근리 사건이 결코 우발적이며 1회성 '사건'이 아니라 한국전쟁 중 미군의 피란민 정책 전체라는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 문건에 담긴 내용 중에는 "낙동강을 넘는 모든 피란민에게 발포하라", "전투지역 모든 민간인을 적으로 간주하고 엄한 조치를 취하라", "보이는 사람은 누구든지 적으로 간주한다", "저지선에 접근하는 피란민은 적으로 간주하고 박격포를 포함한 모든 가용 화기를 동원해 해산시켜라" 등이 있다. 적으로 간주된 피란민 중에는 노인이나 여자, 어린이까지 포함돼 있다. 51년 4월 미 2사단 소곡 정보장교가 지휘관에게 올린 문서에는 "병사들이 노인이나 여자, 어린이를 쏘는 것을 꺼리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런 다양한 문건들은 결국 한국전쟁 종군기자 스톤의 증언이나 북한군 노획문서 기록은 물론이고 그 직접 피해자들의 증언이 (비록 과장이 섞여 있을지언정) 허위가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 물론 AP통신이 새롭게 공개한 문건 또한 지난해 방선주 교수 발굴 문서만큼이나'자료적 한계'가 분명 있다. 예컨대 미군 전투기에 의한 노근리 일대 공중공격이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 노근리 양민학살에 대한 보증수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정부로서는 "노근리 일대 전투기 공습과 양민학살은 무관하다"고 주장하면 그것을 뒤집을 만한 유력한 반대논리를 대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AP통신 노근리 보고서에 대한 미국측 대응이 주목된다. 한편 AP통신 이번 보고서는 미국에서 영어로 출판돼 '커커스 리뷰'(Kirkus Reviews)와 '북리스트'(Booklist), '라이브러리 저널'(Library Jornal)와 같은 유명 서평지들에 소개된 바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