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31일 오전 유가족과 만나기로 했던 야콥 노비첸코는 고(故) 김일성(金日成) 주석으로부터 "막내 동생"으로 불렸을 정도로 각별한 총애를 받았던 인물이라고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지(紙)가 31일 소개했다. 노비첸코씨는 지난 1946년 3월 1일 평양역에서 열린 3.1절 행사에서 연설중이던 김주석을 향해 날아든 수류탄을 몸으로 막아냄으로써 후에 '북한 노동영웅' 칭호를 받은 인물이다. 그는 당시 소련군 소위 신분으로 수류탄을 몸으로 막음으로써 팔을 잃은 것을 비롯해 5군데의 중상을 입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며, 이후 노보시비르스크에서 300km떨어진 트라프노예 마을에서 평범(?)한 농부로 살아오다 7년전 숨졌다. 신문에 따르면 김 주석은 1946년 당시 노비첸코 소령에게 은(銀)으로 만든 담배케이스를 선물한 뒤 한동안 소원해 있다가 지난 1984년 소련을 방문할 때 그를 특별히 찾았다. 김 주석은 당시 그의 이름밖에는 기억하고 있지 않았지만 북한 요원들은 노보시비르스크에서 300km나 떨어진 트라프노예 마을에 있는 그를 찾아냈으며, 이후 노비첸코의 운명은 완전히 바뀌게 됐다. 김 주석은 노보시비르스크 하원에서 마련된 환영만찬도 마다한 채 공식 환영 행사만 마친 뒤 곧바로 그를 만났으며, 그는 한달뒤에 이미 '북한 노동영웅' 칭호를 가지고 부인인 마리야 씨와 평양을 방문했다. 김 주석은 평양에서 그를 왕자처럼 자신의 "막내 동생"이라고 불렀으며 두 사람과의 당시 대화는 곳곳에서 출판돼 북한 역사의 한부분이 됐을 정도라고 신문은 소개했다. 그후 노비첸코는 거의 매년 평양을 방문했으며 그때마다 '산더미 같은 선물'을 받아왔다. 이와 함께 당시 소련 주재 북한 대사관은 김 주석으로부터 "노비첸코가 결코 궁색하지 않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이때문에 노보시비르스크에 그를 위한 집이 지어지고 컬러 TV가 선물되기도 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의 70회 생일 때에는 모스크바의 북한 대사관에서 성대한 기념연이 베풀어지기도 했다. 신문은 노비첸코의 이름은 현재 북한 초등학생들까지 다알고 있다고 전하고, "만일 1946년 당시 그가 수류탄을 막지 않았다면, 북한에 주체사상이 승리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김정일 위원장의 특별열차는 31일 오전 노보시비르스크에 기착, 약 20분동안 정차한 뒤 옴스크로 향했지만 당초 예정됐던 김위원장과 노비첸코 유가족과의 상봉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이날 열차 밖을 나오지 않았고 그의 수행원들이 대신 역에서 대기하고 있던 미망인 마리야 노비첸코(80)씨와 5명의 자식들에게 선물이 담긴 가방을 건넸다. 수행원들은 또 김 위원장이 귀국길에 이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김위원장은 귀국길인 다음달 11일 노보시비르스크에 다시 들를 예정이다. 미망인 마리야 노비첸코(82)씨는 이날 "남편의 행위가 예전과 마찬가지로 두 나라간 우호의 상징으로 남아있다는데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하고, 김위원장의 선물가방에는 "북한의 풍경과 평양모습을 담은 매우 아름다운 사진 앨범이 들어있었다"고 소개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지일우특파원 ciw@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