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청 529호실 안기부 문서사건이 연초 정국을 혼미의 수렁으로 몰아
가고 있다.

민생.개혁법안의 처리, 경제청문회협상, 사정대상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처리, 김대중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 등 모든 정치일정이 표류
하게 됐다.

파장이 대충 멈출 것이라는 징후는 전혀 없다.

여도 야도 한판 "승부"를 위한 전열정비에 분주하다.

여당은 여야 합의에 의한 원만한 국회운영이라는 대야카드는 멀치감치
내던진 상태다.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정치집단과 더 이상의 협상은 의미가 없다"고 공언
하고 있다.

이번주 임시국회에서 여당 단독으로 남은 민생.개혁법안을 통과시키고
경제청문회 개최를 위한 국정조사계획서를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각오다.

국회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도 이제는 더 봐 주고 어쩔 것이 없다는 분위기다.

국민회의 한화갑 원내총무는 "여당이 뜻한대로 모든 것이 안되면 총무직을
내놓겠다"고 공언,의지의 일단을 내비치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전의도 전과 다르다.

529호 사건으로 정국의 주도권을 잡았다고 판단하는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몸을 던져" 여당의 밀어붙이기를 막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민의 정부가 하는 일이 겨우 국회내에 안기부 분실을 차려 놓고 정치
사찰을 하는 것이었나"는 박희태 원내총무는 해볼테면 해보라며 분을 감추지
않았다.

정치권의 분위기는 상대방을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면서 공생하기 어렵다는
쪽이다.

사생결단을 내야한다는 강경 기류가 여야 공히 주조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여야간 긴장 상황을 풀 수 있는 해법은 전혀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여권은 여권대로 모든 현안의 단독처리에 사실상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국정의 주체 세력으로 국민화합을 주창하고 있으면서 "정치적"인 해결에
실패할 경우 그 비난은 일단 여권이 떠안을 수 밖에 없는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전과"를 올렸다고는 하지만 실정법 위반이라는 국민적 비난
여론을 간과할 수 없는 처지다.

이 때문에 당분간은 공방을 펼치는 가운데 냉각기를 가진 후 상황을 보아
정치적 절충이 이루어질 것으로 내다보는 견해가 적지 않다.

회기가 나흘밖에 남지 않은 이번 임시국회가 끝나는대로 다시 임시국회가
소집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분위기상 이번주중 상황이 반전될 가능성은 극히 적고 중순께에 대통령
연두교서 발표라는 정치행사를 놓고 여야의 절충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양승현 기자 yangs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