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뿐인 영광"

6.4 지방선거는 그 어느때보다 흑색선전.비방이 주조를 이룬 "진흙탕 싸움"
으로 점철됐다.

이에따라 대규모 당선무효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여야는 정권교체후 첫 전국적인 선거라는 점에서 향후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선거에서 압승,정계개편의 고삐를 죄려는 여권과 이를 저지하려는 한나라당
이 곳곳에서 전선을 드리웠다.

종전 선거의 주무기가 "돈"이었다면 이번 선거는 "입"이 대신했다.

여야 각당과 후보들은 "돈선거"를 차단한 개정 선거법도 까다로웠지만
IMF 경제난 탓에 표심을 끌어 모으는데 뾰족한 수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상대방 흠집내기에 열중했다.

원색적인 공격은 사실여부를 떠나 선거 무관심층의 눈길을 잡아두는데는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게 한나라당 김홍신의원의 "공업용 미싱 발언" 파문.

김대중대통령을 거짓말장이로 묘사한 이 발언은 여권이 김 의원에 대한
사법처리와 의원직 박탈등을 주장해 선거전 최대 쟁점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역대 선거중 고소.고발건수가 가장 많았다는 점도 이번 선거의 혼탁상을
말해준다.

피고발자 명단에 김종필 국무총리서리, 국민회의 조세형 총재권한대행,
자민련 박태준 총재, 한나라당 조순 총재 등 여야 수뇌부가 모두 올라 있다.

95년 6.27선거 당시 44건에 불과했던 선관위 고발건수가 93건으로 배이상
늘었고 흑색선전.비방관련 징계도 37%나 늘었다.

짧은 선거운동 기간이었지만 특별한 선거 이슈가 없었던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

환란책임공방 병역시비 정계개편 관권선거 경제정책혼조 지역갈등 등이
그나마 선거전을 데웠을 뿐이다.

환란책임공방은 김영삼정부에서 총리와 부총리를 지낸 고건씨와 임창열씨가
국민회의 서울시장과 경기지사 후보로 각각 나서면서 군불이 지펴졌으나
여권이 한나라당 "원죄론"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소강상태를 보였다.

정계개편은 선거 내내 "안정적인 정국운영론"을 주장하는 여권과 "여당
견제론"을 전파한 한나라당이 맞붙은 단골 메뉴였다.

그 사이 지방일꾼을 뽑는다는 선거의 의미는 크게 퇴색됐고 "정책대결"도
덩달아 자취를 감췄다.

그나마 내놓은 정책은 "베끼기" 논쟁에 휘말려 선거 무관심을 부채질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TV토론도 방송시간이 심야나 낮에 편성된데다 내용과 형식을 특화시키지
못해 관심을 끌지 못했다.

유권자들은 선거판을 철저히 외면했다.

합동연설회장엔 유권자들의 열렬한 박수대신 이상 한파가 몰아쳤다.

청중들이 1천명을 넘은 경우가 거의 없었고 후보자간 합동연설회를 취소
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반면 이번 선거에서도 지역할거주의가 예외없이 기승을 부렸다.

"호남은 국민회의", "충청은 자민련", "영남은 한나라당"이란 도식을
허물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의 "텃밭"이 아닌 지역에는 아예 후보자를 내지 않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적진에선 "하나 마나"란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

결론적으로 중앙당 주도의 과열선거운동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착이라는
지방선거 본래의 의미를 퇴색시켰다는 지적이 많다.

이번 선거를 굳이 점수로 환산하면 "F학점"일 거란 얘기가 나오는건 이런
이유에서다.

< 남궁덕 기자 nkdu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