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증인채택문제가 회기를 불과 1주일을 남겨둔
제1백83회 임시국회의 "뜨거운 감자"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

국회 한보사태 국정조사특위의 최대 쟁점이면서도 여야의 현격한 입장차로
여론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져가고 있던 현철씨 문제가 여권 내부의 기류
변화로 유동적 상황으로 바뀌어가는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현철씨 관련소문이 확대 재생산되도록 방치하는 것보다는
국회에서 최종정리를 하는 편이 유리하므로 그를 국정조사 증인으로 출석
시켜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한 여론을 감안, 현철씨를 증인으로 세워 시시비비
를 가리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한보사태와 현철씨 관련문제를 대선까지 쟁점화하려는 야권의 공세를 맞받아
치는게 낫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계에서조차 현철씨 문제의 경우 차기정권으로까지 넘어갈 인화력을
가진 사안인 만큼 차라리 지금 "걸러버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와관련, 여권 내부에서는 현철씨를 국정조사활동 마지막날 증인으로 출석
시키는 방안 등 구체적인 대야협상카드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기류를 간파한 야당은 10일 대여공세의 고삐를 다시 거머쥐기 시작
했다.

국민회의는 이날 간부회의에서 현철씨를 국회 한보국정조사특위의 증인으로
반드시 채택해야 한다는 기존 당론을 재확인했다.

정동영 대변인은 "현철씨를 국정조사특위의 증언대에 세우지 않는 국조특위
는 불가하다는게 우리 당의 확고한 입장"이라며 "흐트러진 민심을 추스르기
위해 현철씨는 국조특위에 증인으로 출석, 지난 4년간의 국정문란 진상과
한보와의 연결고리를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민련 안택수 대변인도 "그가 깨끗하고 정도로만 살아왔다면 국회청문회
증인출석을 왜 기피하고 있는지 상식적으로 납득할수 없다"며 "현철씨는
국회에 출석해 자신과 관련된 모든 의혹에 대해 떳떳하게 증언하라"고 촉구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여권의 공식 반응은 "요지부동"이고 "사실무근"이다.

신한국당 서청원 총무는 이날 "시중에 나도는 설만 갖고 뚜렷한 혐의도
없는 사람을 어떻게 증인으로 채택할수 있느냐"며 "현철씨를 증인으로 채택
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바 없다"고 일축했다.

서총무는 "당에서 현철씨가 국회에서 증언하도록 청와대에 건의했다는 설도
사실이 아니다"면서 "여야 총무회담에서도 현철씨를 출석시킬수 없으며 또
건의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현재 여권의 전반적 기류는 현철씨의 국회출석이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이는 현철씨가 국회에 출석할 경우 한보사태 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온갖
소문이 도마위에 올라 불똥이 뜻하지 않은 곳까지 튈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여야가 이날 국회에서 한보특위 전체회의를 열어 그동안 조사
계획서 작성소위에서 타결을 보지 못했던 현철씨 증인채택과 청문회 TV생중계
등 두 현안을 놓고 절충을 벌였으나 기존 입장차를 확인하는데 그쳤다.

한보사태 국정조사가 "물건너간"게 아니냐는 시각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되고
있다.

신한국당 박헌기, 국민회의 이상수, 자민련 이인구의원 등 여야 3당 간사들
마저 한보 청문회 개최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 상태다.

이들은 한결같이 "현재 남아있는 방법은 지도부의 판단에 따른 정치적 해결
밖에 없다"며 "이대로 가다간 청문회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한보국조특위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과 관련, 여야의
이해가 서로 맞아 떨어진데서 나온 당연한 결과라는 비판적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여권으로서는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고 야권으로
서도 이른바 "정태수 리스트" 등 새로운 돌발변수가 터져 나올 경우 궁지에
몰릴 수도 있는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그러나 여야가 조금씩 입장변화만 보인다면 형식적이나마
한보국정조사가 진행될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야당측이 현철씨 증인채택 문제보다는 청문회 TV생중계 쪽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고 여당측도 현철씨 문제를 야당이 고집하지 않는다면 TV생중계에
신축적으로 대처할수 있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런 관측과 무관치
않다.

< 김삼규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