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이 25일 발표한 대국민담화는 성격이 시국수습담화이다.

새해초부터 노동법파동과 한보사태로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고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따라서 담화가 "취임 4주년을 맞아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이라는 평범한
제목을 달았지만 내용은 주로 국정운영의 실패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짜여져 있다.

국정운영의 난맥상에 대해 국정최고책임자로서 진솔한 마음으로 사죄하고
"비상시국"을 타개하기 위한 향후 국정운영방향을 제시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취임 3주년까지만해도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은 과거 치적이나 업적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내용이 주류를
이뤘으나 이번에는 그같은 내용이 전혀 없었다.

취임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은 김대통령으로서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이날 담화는 그런 점에서 내용면에서나 자세면에서 취임 4년중 가장
겸허하고 낮은 자세로 임했다는게 중평이다.

특히 현철씨부분에 대해서는 마치 "부자의 정"을 끊는듯한 결연한 각오를
보였다는 점에서 비장감마저 느끼게 한다.

이번 담화는 크게 <>취임4주년 회고및 소회 <>한보사건에 대한 사죄및
심경 <>대통령 차남인 현철씨 거취에 대한 정리 <>남은 1년의 국정운영방향
<>국민에 대한 당부로 나눠져 있다.

김대통령은 한보사건과 관련, "이유야 어떠하든 이 모든 것은 저의 부덕의
결과로 대통령인 저의 책임"이라며 "대통령으로서 이번 사건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대국민사과입장을
표명했다.

국민에 대한 사과는 "고개를 들수 없다" "처절하고 참담한 심정" "괴롭고
송구스런 마음" "제 자신의 불찰" "어떤 질책과 비판도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등 10여차례에 걸쳐 다양한 표현으로 표시, 김대통령의 심정을 나타내는데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김대통령의 이번 담화는 어떻게 보면 대국민항복
선언문과도 같다"며 "이제는 한보정국으로 야기된 허탈과 좌절을 딛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국력을 재결집할때"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차남인 현철씨 부분과 관련,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아들의 허물을 곧 아비의 허물이라고 여기고 있다"며
"매사에 조심하고 바르게 처신하도록 가르치지 못한것, 제 자신의 불찰"
이라고 사과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현철씨문제를 일단 <>귀책성에 따른 응분의 사법적 책임
<>일체의 사회활동중단 <>대통령 가까이 두지 않을 것등을 약속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청와대고위당국자는 이부분에 대해 "부자의 정을 끊게 만들도록 보필을
잘못한데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이번 담화의 백미를 바로 이 부분에 두고 있다.

담화의 다른 부분은 몰라도 이 부분만은 국민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담화전반부가 한보정국에 대한 시국수습의 해법을 나름대로 제시했다면
후반부는 "한보비상시국"을 극복하고 국정운영청사진을 제시하는데 할애됐다.

김대통령은 남은 1년의 국정운영지표로 <>부정부패척결 <>경제살리기
<>안보태세강화 <>공정하고 엄정한 대선관리등 4대지표를 제시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인사개혁도 단행하겠다"며 "깨끗하고 능력있는 인재들을
광범위하게 구하여 국정의 주요 책임을 맡기겠다"고 강조, 조만간 전면적인
당정개편과 인사쇄신이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빠르면 이번주중 청와대비서진 개편을 시발로 당정개편이
순차적으로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김대통령은 이번 담화발표를 계기로 시국수습을 위한 구체적인 후속조치에
곧바로 착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 최완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