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이 20일 여야영수회담을 전격 수용키로 기존방침을 선회한
데는 현재의 파업정국이 계속되는 한 올 최대의 국정목표인 "경제살리기"에
커다란 차질을 빚을 것이란 현실인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여권이 계속 강경방침을 고수하다가는 점점 확산되는 민심이반현상을
수습하기 어렵다고 판단, 정국의 주도권을 잡으면서 조기에 민심을 수습하
겠다는 김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는 25일로 한일정상회담이 예정된 만큼 정상외교에 임하는
김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출국전에 난마처럼 얽혀있는 국내정국의 가닥을
풀어놓고 떠나는 것이 유리하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한일정상회담 이후에 여야영수회담을 한다고 해도 뚜렷한 정국돌파구가
마련되는 것이 아닌 상황에서 시간을 더이상 끌 이유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고위관계자는 이와관련, "영수회담이란 대통령의 결심에 달려있는
것"이라며 "이번 경우에도 대통령이 해야겠다고 상황을 판단한데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이 김수환추기경 등 종교계지도자들과 시국대화를
시작하면서 결심을 하신 것 같다"며 선회배경을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대통령이 종교계지도자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대화로
시국을 풀어야 한다는 건의를 받고 심사숙고하신 것 같다"며 "특히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동법을 개정했지만 이것 때문에 지금 경제가 망가지게 됐다는
지적을 대통령에게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결국 종교계지도자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민심이반현상을 다시한번 확인
하고 김대통령 특유의 정면돌파방식을 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회담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노동관계법의 재개정여부이다.

야권은 그동안 노동관계법의 무효화를 주장하면서 신한국당이 기습처리한
노동관계법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이에대해 여권은 "야권이 노동관계법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경우 국회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노동관계법이 일단 통과된 이상 무효화나 백지화는 있을 수 없으며 야권이
개정안을 내놓으면 논의하는 절차를 거쳐 재개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노동관계법에 대한 김대통령의 의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김대통령이 "노동관게법에 문제가 있다면 국회에서 대화로
풀어보자"는 정도의 언급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개정은 없다"고 못박았던 기존방침에서 이정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여권으로서는 큰 양보이며 야당총재들도 이정도의 양보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여권의 분위기다.

이와관련, 청와대고위당국자는 "앞으로 문제가 풀릴지 여부는 전적으로
국회에 달려있다"고 말해 핵심쟁점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치권에서 문제를 일으킨 만큼 정치권에서 문제를 풀도록 해 여권핵심부로
쏟아지는 화살을 피하겠다는게 여권의 계산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회담에서 김대통령은 불법파업주동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대화로 정국을 풀어가되 정부가 법집행에 대해서는 단호해야 한다는게
정부를 비롯한 여권의 입장이다.

안기부법철회에 대해서도 김대통령은 단호한 입장을 천명할 것으로 예상
된다.

경찰에 대해서도 대공수사권을 부여한 마당에 대공수사의 중추기관인
안기부에 수사권이 없어서는 말도 안된다는 견해를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 최완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