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전대통령 비자금사건 2차공판이 열린 18일 피고인들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이 일사천리로 마무리되면서 이번 사건을 둘러싼 법적공방이
일단락됐다.

이날 공판에서 노씨측이 이미 자신의 주장을 충분히 알렸다며 반대신문을
포기한데 이어 나머지 피고인들도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대신 뇌물성 공여를
부인하는 선에서 반대신문을 마무리 했다.

이번 공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재판을 신속히 진행하자는 재판부와
피고인측의 일치된 입장.

이에따라 오는 29일 3차공판에서는 재판부와 검찰 변호인측의 간단한 보충
신문에 이어 곧바로 결심공판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날 공판에서 뇌물공여혐의로 불구속기소된 기업인들은 당시 정치관행상
돈을 건네줄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성을 호소했다.

또 그 대가로 특혜를 받지않았다는 점을 부각시키는데 주력했다.

반대신문에 나선 변호인들은 기업총수들이 노씨에게 건네준 자금은 뇌물이
아니라 오랜 관례에 따른 성금이었다는 요지의 변론을 폈다.

이는 지난달 18일 1차공판때 뇌물수수혐의를 집요하게 관철시키려는 검찰의
공소내용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성격의 변론이었다.

나아가 책임있는 경제주체로서 "도덕적 책임"은 공유할 수 있지만 반대
급부를 바라고 정치권력에 야합한 적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달코자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첫번째로 반대신문을 나선 쪽은 이건희삼성그룹회장의 변호인단.

이보환변호사는 기업성금의 관례화와 "준조세"의 성격을 강조했다.

그는 이회장에게 "지난 3공시절부터 불우이웃돕기성금 공무원사기진작
격려금 선거지원자원금등 많은 자금들이 국가예산에 편성되지 않은채 사용돼
왔다"면서 "이 돈은 대부분 기업들의 성금으로 충당됐으며 기업입장에서는
사실상 준조세의 성격을 가진 것 아니었느냐"고 질문, "그렇다"는 답변을
이끌어냈다.

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의 변론을 맡은 이정락변호사는 대우그룹이 국내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김회장의 활발한 해외활동등 주요 경영업적을
부각시키는등 "정상참작"의 요인들을 꼼꼼하게 제시했다.

이와함께 월성원자력발전소 화력발전소 잠수함기지건설공사등 주요국책사업
수주와 관련 특혜를 받지 않았다는 진술을 유도하기도 했다.

동아그룹 최원석회장 변호인측은 "기업이미지"를 중심으로 변론을 폈다.

최근 60억달러에 이르는 말레이지아 바쿤수력발전소 수주를 앞두고 이번
사건이 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변론에 나선 윤승영변호사는 "기업총수가 기소되는 바람에 말레이지아
정부에서 현지법인의 설립을 요구하는등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며 기업경영의 어려움을 우회적으로 호소했다.

김준기동부그룹 정태수한복룹 장진호진로그룹 이준용대림그룹회장등 나머지
기업총수들의 변호인단과 기업성금의 정치헌금성을 강조하는 수준에서 반대
신문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법원일각에서는 기업측의 이같은 반론이 재판부를 설득시킬수는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실관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구체적인"형태의 뇌물수수혐의는 아니더라도
직무와 관련, "포괄적인" 성격의 뇌물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재판부가 노씨 비자금사건과 관련, 악화되어 있는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없는 점도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재판의 "결론"이 제한돼 있다는 현실을 누구나 예상하고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번 비자금사건은 오는 3차공판때 15명의 피고인에 대한 보충신문
과 결심에서 피고인별 구형절차를 거친 뒤 12.12및 5.18사건과 병합심리로
공판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조일훈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