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간의 경수로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지난 20일부터 콸라룸푸르에서 준고위급회담을 통해 경수로협상을 벌이고
있는 북한과 미국은 현재 대부분의 사항에 관해 합의를 본 상태다.

다만 일부 표현문제로 북한과 미국,미국과 한국간에 최종조율작업을 벌이고
있다.

우선 북미간에 합의된 사항중 핵심쟁점이었던 "한국형" 수용문제는 양측이
"KEDO에 의해 제공되는 경수로"라는 표현으로 한발씩 양보, 합의를 봤다.

KEDO설립협정에 "한국형경수로의 공급"이 KEDO의 주요 설립목적으로 명기돼
있기 때문에 이는 사실상 한국형을 받아들인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평가다.

이와함께 주계약자 문제도 KEDO가 선정토록 함으로써 사실상 한전이
주계약자가 돼야 한다는 한국정부의 입장이 관철됐다.

이에 따라 경수로지원사업은 앞으로 KEDO와 북한대외경제위원회가 경수로
공급협정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가닥이 잡혔다.

다만 이 과정에서 미국기업이 프로그램코디네이터(종합감리사)를 맡아
북측 조선설비수출회사와 협력협정을 체결, 설계에서 감리까지의 전반적
사항을 관장토록 해 "미국기업이 전반적인 감리.감독을 맡아야 한다"는
북한측 주장이 일부 받아들여졌다.

이밖에 이번 회담에서는 제네바합의사항이었던 연락사무소 개설과 중유
제공 문제도 합의문에 명기하는 쪽으로 의견접근을 본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북한은 "체면"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러나 양측간에는 여전히 합의를 이뤄내야할 부분이 남아있다.

정부는 미합의사항에 대해 함구로 일관,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으나
두가지가 쟁점으로 남아 있다는게 지배적 관측이다.

하나는 북측이 이번 회담 중반부터 들고나오기 시작한 10억달러 상당의
부대시설 문제다.

북한은 자신들이 한국형을 받아들이는 대신 <>송.배전망 시설 <>시뮬레이터
(모의작동장치) <>특수항만시설 <>핵연료공장등 경수로 부대시설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하고 이를 이번 합의문에 명시하자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다른 것은 불가능하고 시뮬레이터와 기술자연수는 지원
할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부대시설은 북미간 합의사항이 아니며 이번 회담이
끝난후 남북간에 경협차원에서 논의할수 있다"는 자세다.

두번째는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이번 합의문에 집어넣느냐의 문제다.

한국은 북한이 사실상 한국형을 수용하긴 했으나 주계약자 선정과정에서
"딴소리"를 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제네바합의때와 마찬가지로 북한은 합의가 끝난후 불명확한 사항에 관해
시비를 걸어오거나 "발뺌"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래서 정부는 "한국이 설계 제작 시공등 경수로제공사업 전반에 걸쳐
중심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문구를 넣자는 주장이다.

아울러 정부로선 이달말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명확히 해야 대국민설득이 가능하다는 정치적 부담까지 안고 있어 쉽사리
양보할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 두가지 사안을 놓고 한미양국은 현재 외교채널을 총동원, 숨가쁜 조율
작업을 진행중이다.

공노명외무장관은 7일저녁과 8일오전 두차례에 걸쳐 제임스 레이니주한대사
를 불러 양국공조방안을 논의했다.

김영삼대통령도 8일오전 클린턴미대통령과 전화통화를 갖고 한미양국의
긴밀한 공조를 재확인했다.

클린턴대통령은 한국과의 긴밀한 협의를 위해 9일 로버트 갈루치미핵대사를
한국에 보내겠다는 얘기도 했다.

결국 이번 콸라룸푸르회담은 한미양국이 부대시설 제공과 한국의 중심적
역할에 관해 어떤 합의를 도출해내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할수 있다.

더욱이 조심스러운 것은 북한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이
두가지 문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외교관측통들은 그러나 이같은 난제에도 불구, 이번 회담이 이번주
를 넘기지 않을 것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한국도 "북한이 사실상 한국형을 받아들인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나웅배
통일부총리)하고 있는데다 주석취임을 앞둔 북한의 김정일 역시 김일성
사후 1주기를 맞는 7월8일 이전에 외교성과를 올려야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
이다.

이에 따라 북미양측은 이번 주말쯤 최종 합의문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김정욱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