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당지도부가 지자제선거는 법정시일에 반드시 실시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음에도 행정구역개편 논의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 행정구역개편의 필요성이 제기된후 2개월여동안 소모적인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개편논의가 겉으로는 "불합리한 부분"의 조정쪽에 모아져 있어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문제는 논의자체가 여권핵심부의 지자제선거
연기 "결단"과 연계되어 있을 가능성 때문에 정치권의 비상한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민자당은 그동안 당에서 이문제를 공식논의해야 하느냐를 놓고 이견을
보이다 18일 돌연 "정책위에서의 검토"로 당론을 결정했다.

이같은 사태진전에 접한 정치권인사들은 여권핵심부가 이제 선거연기여부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힐 때가 다가온 것으로 보고 그 시기가 언제일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체적으로는 김영삼대통령의 취임 2돌이 되는 오는 25일께에는 지자제
선거연기문제에 대한 가닥이 잡힐 것으로 일단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러나 김대통령이 유럽순방을 마치고 귀국한후 3월말께 입장을
밝히지 않겠느냐는 분석을 하고 있다.

물론 이같은 후자의 분석은 선거연기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20일부터 3월7일까지의 임시국회기간동안 행정구역개편의 필요성이 충분히
부각된후 결단을 하게될 경우 정치적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난해말 행정구역개편논의가 일면서 일부에서 선거연기 음모와 연계되어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김대통령은 올초 연두기자회견에서 행정구역개편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시기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었다.

지자제선거는 예정대로 치른다는 방침에 전혀 변화가 없다고도 했다.

진원지가 어디냐는 질책도 있었다.

정치권의 논의는 자연히 꼬리를 감추는듯 했었다.

그러다 지난 13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기존 행정조직이 주민자치의
실현에 다소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고 곧바로 "여권실세"인 민자당의
김덕룡사무총장은 이를 공론화시키는 작업의 "총대"를 메고 나섰다.

당내 초.재선의원 16명도 17일 "사전 보고없는 모임"을 가진후 이춘구대표
를 방문, 행정구역개편문제의 공론화를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이들의 움직임이나 심지어 경실련의 문제제기도 모두 김총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일련의 계산된 "수순"이 아니겠느냐는 분석을 낳고 있다.

이대표는 이들의 움직임에 대해 논의자체를 금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기적
으로 지자제선거의 연기등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신중한 처신"
을 당부하기도 했다.

민자당은 하루뒤인 이날 고위당직자회의를 열어 초재선그룹등 공론화를
요구하고 있는 의원들은 행정구역을 포함해 문제가 되는 부분을 당정책위에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정책위는 제시된 안을 검토해 보는 쪽으로 선회했다.

물론 정책위의 검토대상은 선거전에 조정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달긴했다.

정치권에서는 그러나 이날 "정책위의 검토"라는 사태진전에 의미를 부여
하면서 "결단"의 시기와 내용을 예의주시하는 형국이 됐다.

< 박정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