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공개 2시간 만에 누더기 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안
지난 17일 보건복지부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검토안을 발표했다. 시범사업 시행을 2주 앞두고 처음으로 공개한 방안이었다. 이날 오후 3시 복지부는 1차 설명회를 열었다. 초진 허용 대상자에 ‘심야(평일 오후 6시~다음날 오전 9시), 휴일 시간대 소아 환자’ 등이 포함됐다. 제한적이지만 장애인이나 65세 이상 노인 등의 거동 불편자도 초진 허용 대상이었다. 독감 등 감염병 환자에게 약 배송을 고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기자단을 대상으로 한 1차 설명회와 동시에 진행한 당정협의회가 끝난 뒤 복지부는 입장을 바꿨다. 불과 2시간 뒤인 오후 5시 소아 환자 초진과 약 배송 관련 논의는 ‘추가 보완’하겠다는 모호한 표현으로 검토안을 수정했다. 보완 방향을 묻는 기자들의 질의에는 “정해진 바 없다”고 했다.

복지부의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를 두고 당정이 직역단체의 눈치를 너무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의료계와 산업계는 초진 진료와 약 배송 서비스의 허용 여부를 놓고 격렬한 의견 다툼을 벌였다. 의약계는 안전을 문제 삼았고, 산업계는 두 서비스 없이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 기업들이 고사할 수밖에 없다고 맞섰다. 대한약사회는 비대면 진료에 약 배송 서비스가 포함된다면 총파업 등 전면 투쟁을 벌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결국 정부와 여당은 의료계 직능단체들에 양보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계산을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산업계는 사실상 약 배송 금지 결정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비대면 진료와 약 배송이 함께 갈 것이라는 취지로 말해왔기에 이번 시범사업안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며 “복지부가 발표한 누더기안을 제대로 서비스로 구현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다”고 했다.

복지부는 이날 발표한 검토안이 확정안이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6월 1일까지 산업계와 의약계의 입장을 반영해 수정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시작은 이제 2주밖에 남지 않았다.

시범사업 내용이 확정되지 않으면 플랫폼 기업들이 서비스 준비도 할 수 없다. 환자의 초진, 재진 여부를 플랫폼 기업이 가려낼 수 있도록 진료 데이터를 공유하는 게 현재로선 불법인 것도 문제다. 플랫폼 기업을 이용한 환자가 초진, 재진 선택을 잘못했을 경우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다. 이런 기술적인 문제를 최소화하는 데 필요한 시간조차 정부가 배려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환자 치료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의료계의 밥그릇 지키기에 밀려 반쪽짜리가 될 위기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