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탄소중립, 인프라 확충이 먼저다
정부는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안)’을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산업 부문에서 제조업 중심의 특성과 수출 경쟁력을 고려해 온실가스 감축을 기존 계획보다 하향 조정하는 대신 발전(發電) 등 에너지전환 부문에서는 감축을 늘렸다. 이와 함께 수송 부문에서 전기차와 수소차를 450만 대까지 확대하는 등 무공해차 보급을 가속화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석유, 석탄, 가스 등 화석연료를 중심으로 성장해온 한국 에너지 기업은 시장 변화에 맞춰 친환경에너지로 사업을 전환하는 것이 발등의 불이 됐다. 이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나 셸 같은 글로벌 에너지 기업은 재생에너지나 수소 생산 또는 관련 인프라 분야로 사업 전환을 추진 중이며,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같은 산유국의 국영기업도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는 인도의 석유공사(Indian Oil Corporation) 사업 전략도 눈에 띈다. 자국 석유시장 소비의 50% 이상을 담당하지만 내연기관차 비중이 줄어들면서 수요 감소에 대비해 화학사업 비중을 늘리는 한편 주유소에 전기차 충전설비를 대대적으로 확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통상 에너지전환이 순조롭게 이뤄지려면 생산, 수송, 저장 전반의 공급 인프라 구축을 병행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 인프라는 폐업하고, 새로운 인프라 구축은 사업성 결여와 민원 등의 사유로 더디다.

일례로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까지 여겨지던 주유소 사업이 최근 들어 ‘줄폐업’하고 있다. 전국의 주유소 수는 지난해 말 1만1144곳으로 전년에 비해 234곳 줄었다. 전기차 같은 친환경차 보급이 급증하면 2030년까지 2000여 곳이 더 없어지고 2040년이 되면 2600여 곳만 남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에너지전환이 가속화하면 2030년까지 전기차 충전기는 123만 기, 수소충전소는 660곳 이상 늘어나야 한다. 친환경차 보급의 가장 큰 걸림돌로 인프라 부족을 꼽는 것도 주유소나 LPG 충전소가 급속히 사라지면서 과연 전기차와 수소차 충전소 보급이 원활할지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같은 에너지전환기에는 사업 전환을 기업에만 의존할 수 없다. 과거에도 에너지 수요가 빠르게 변화했을 때 적극적으로 정부가 개입해 좌초자산을 폐기하고 신규 사업 진출이 원활하도록 규제 완화 등 지원을 병행했다. 1980년대 연탄 소비가 급격히 줄자 석탄산업 구조조정을 선제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정부가 탄광의 폐광 사업비를 직접 보조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 자동차가 급격히 늘면서 이에 필요한 주유소 확대를 위해 주유소 간 거리제한 기준을 완화했다. 최근 미국이나 유럽이 친환경차 보급에 맞춰 수소 배관망이나 전기차 충전설비 등 인프라 확충에 정부 지원을 확대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에너지 인프라 구축에는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하고 적당한 부지를 찾기도 어렵다. 새로운 설비 확충 노력과 더불어 기존 인프라를 사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천연가스 저장시설이나 배관 등 기존 인프라를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현재 운영 중인 주유소를 폐업하기보다는 전기차나 수소차 충전소로 전환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사업 전환에 필요한 투자 재원과 전환 과정에서 초기 손실을 최소화하도록 한시적인 지원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도심에는 신규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기 어려운 만큼 기존 인프라의 사업 전환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