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한국 소주 vs 일본 소주
과일이나 곡류를 발효해 만든 술(양조주)의 알코올 도수는 14~16도가 한계다. 최대한 높여도 20도를 넘기 어렵다고 한다. 알코올 비율이 19%를 넘으면 과당이나 전분을 에탄올로 바꿔주는 효모가 사멸해 더 이상 발효가 안 되기 때문이다. 양조주는 원재료의 맛과 향,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고 값도 비교적 싸지만 보존성이 떨어진다. 숙취를 유발하는 불순물이 많은 것도 단점이다.

그래서 나온 게 증류주다. 술의 주성분인 알코올과 물의 끓는점은 각각 78도와 100도다. 따라서 술을 가열하면 알코올이 먼저 증발한다. 이를 모은 것이 증류주인데 도수가 35~60도로 확 높아져 장기 보존이 가능하고 숙취 유발 물질이 걸러져 뒤끝이 깨끗한 것이 장점이다. 유럽의 위스키 코냑 보드카, 중국의 바이주(白酒), 멕시코의 테킬라, 한국의 소주와 일본 쇼츄(燒酒) 등이 모두 증류주다.

연금술이 발달한 아랍에서 가장 먼저 증류 기술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화한 술의 모습이 땀방울 같다고 해서 땀이라는 뜻의 ‘아라크(Arak)’라고 불렀다. 이것이 각국으로 전파돼 몽골에선 ‘아라키(亞刺吉)’, 만주족은 ‘알키’, 원나라를 통해 증류주를 받아들인 고려에선 ‘아라길주(阿喇吉酒)’라고 했다. 술방울이 이슬처럼 맺힌다고 해 노주(露酒)라고도 불렀는데 현대의 희석식 소주 이름에 ‘이슬’이 들어간 것도 우연은 아니다. 국내에선 문배술과 민속주 안동소주, 진도홍주 등이 대표적인 증류주다. 고순도 주정에 물을 탄 희석식 소주가 서민의 술로 자리 잡으면서 상대적으로 비싼 증류식 소주는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근래 들어선 다양한 브랜드의 증류식 소주가 시판되면서 소비량도 꽤 늘고 있는 모양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그제 정상회담을 마친 뒤 한국 소주와 일본 특산 고구마 소주를 마시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특히 한국 소주와 일본 맥주를 섞은 폭탄주도 마셨는데 두 정상은 이를 ‘화합주’ ‘한·일 우호주’라고 불렀다는 전언이다. 밑술을 증류해 순도 높은 소주를 만들듯 한·일 양국이 불행했던 과거사를 청산하고 미래를 향해 더 큰 걸음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