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분열의 시대, 기업의 생존 전략은
작년 7월 17일 중국 난징시는 같은 달 말 열릴 예정이던 ‘애니메이션 코스프레’ 행사를 돌연 취소했다. 행사 자체는 일본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나쓰마쓰리(여름 축제)’라는 일본식 행사명이 문제였다.

“난징대학살이 일어난 도시에서 일본을 연상시키는 행사를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일본의 문화 침략”과 같은 비난이 빗발쳤다. 난징대학살은 1937년 일본 육군이 난징에서 포로와 민간인 등 30만 명(중국 측 주장)을 살해한 사건이다.

지금은 난징 도심 일식집에 줄이 늘어서고 일본 전자제품 양판점인 야마다전기가 성업 중이다. 하지만 난징은 ‘중국에서 일식집이 가장 마지막으로 진출한 곳’일 정도로 반일 정서가 강한 지역이다.

낮추기 힘든 중국 의존도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2021년 8월 다롄시는 당나라와 동시대 교토의 거리를 재현한 중·일 공동 프로젝트를 돌연 중지했다. 만주사변의 발단이 된 류타오후 사건 90주년을 한 달가량 앞두고 반일 감정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작년 9월로 중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 지 50년이 됐지만 중국인의 반일 감정은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고 한다. 치열해지는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경제안보법 등을 제정해 분명한 미국 편에 선 일본에 대한 중국인의 시선은 더 차가워지고 있다.

일본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가장 속 편한 해결책은 중국과 결별하는 것이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중국은 일본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시가총액 100대 기업 가운데 41곳의 매출 10% 이상이 중국에서 나온다.

최근 일본은 적극적으로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중국 현지법인 직원은 2015년 162만 명에서 2019년 130만 명으로 줄었다. 최근 2년간 일본 기업의 중국 기업 인수합병(M&A) 규모는 56% 급감했다.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일본 기업들은 고육책을 택했다.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58%에 달하는 무라타제작소와 일본 2위 자동차기업 혼다는 생산과 판매 체계를 중국과 중국 이외 시장으로 이원화했다.

'반일' 넘어선 일본 기업들

반일 정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중국 시장 점유율을 늘린 일본 기업이 두 곳 있다. 유아용품 전문 기업 피존과 일본 최대 공조회사 다이킨공업이다. 중국 시장에서 피존은 고품질 젖병, 다이킨공업은 실외기 한 대로 가정 내 여러 방을 제어할 수 있는 에어컨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운다.

2012년 센가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영토 분쟁이 격렬해지자 중국에서는 대규모 반일 불매 운동이 벌어졌다. 하지만 불매운동의 열풍도 아기에게 더 안전한 젖병을 물리려는 모성애와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에어컨 없이는 못 산다’는 중국의 더위를 넘지는 못했다.

국제 정치학자 이언 브레머는 “지난 50년간 거의 일직선으로 글로벌화가 진행됐지만 앞으로 세계는 얼룩무늬 모양으로 다양하게 분단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시장에서 한국은 싫어도 살 수밖에 없는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