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결선투표
득표율 과반 후보자가 없을 때 1, 2위가 맞붙는 결선투표제로 반전이 일어난 사례는 많다. 1970년 신민당 대선 경선에서 유진산 총재의 지원을 받은 김영삼(YS) 후보는 1차 투표에서 421표를 얻어 김대중(DJ·382표) 후보를 따돌렸으나 과반을 얻지 못했다. 결선투표에선 이철승 후보가 DJ를 지원하는 바람에 YS는 고배를 마셨다.

1979년 신민당 총재 경선에서 박정희 정권은 대여 강경파인 YS를 막기 위해 물밑에서 이철승 후보를 밀었다. 1차에서 이 후보가 1위를 차지했지만, 결선투표에선 예선 3위 이기택 후보의 지원에 힘입어 YS가 승리했다. 2021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때 이재명 후보는 1차에서 50.29%를 얻었다. 하지만 정세균·김두관 등 중도 사퇴 후보의 득표도 포함하면 49.3%에 그쳐 이낙연 후보 측이 결선투표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62년 대선 결선투표제를 도입한 프랑스에서는 1974년 1차 투표에서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후보가 프랑수아 미테랑 후보에게 졌으나 TV토론 호평에 힘입어 결선투표에서 반전을 이뤘다. 7년 뒤엔 반대로 미테랑 후보가 결선에서 지스카르데스탱 후보에게 역전했고, 1995년엔 자크 시라크 후보가 결선에서 전세를 뒤집었다. 2012년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는 1차에서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상에게 졌으나 결선에서 승리하면서 총리직을 다시 거머쥐었다. 결선투표제는 과반 지지로 당선돼 대표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지지율이 낮아도 합종연횡에 따라 역전이 가능해 민심 왜곡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이 ‘3·8 대표 경선’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한 것은 친윤석열계 후보 당선을 위한 안전장치였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현재 친윤계 지원을 받는 김기현 의원과 안철수 의원 간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두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과반을 얻지 못하고 있어 결선투표 가능성이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불출마를 선언한 나경원 전 의원 지지 표심의 향방과 반윤계 유승민 전 의원 출마 가능성, 다른 후보들이 양강 중 누구 표를 더 잠식할지 등 변수가 널려 있다. 또 한 번의 반전이 일어날지 주목된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