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국감 핵심 타깃이 된 스타트업
“정치인들이 경쟁하듯 스타트업 대표를 국정감사에 불러대는 분위기입니다. 최근 경기 악화로 쓰러지는 스타트업이 계속 나오는데 정작 그건 신경 안 쓰고….”

국내 스타트업 대표들의 국회 국감 줄소환 소식에 따른 2년 차 스타트업 대표 A씨의 지적이다. 이번 국감에는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의 이석우 대표, 배보찬 야놀자 대표, 김범준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대표, 장지호 닥터나우 대표, 최형록 발란 대표 등 국내 유망 스타트업 대표 10여 명이 호출당했다. 이름깨나 있는 스타트업은 죄다 호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 대표는 “이렇게 많은 경우는 처음 본다”고 했다. ‘기업 감사’로 변질된 국감의 타깃이 이젠 스타트업으로 확대하는 모양새다. 우아한형제들은 정무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환경노동위 등 세 곳에 나가야 한다. 당근마켓은 설립 8년 차에 벌써 두 번이나 국감 증인 명단에 올랐다.

왜 불렀는지를 이해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블록체인 스타트업 DSRV의 김지윤 대표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회 정무위는 “DSRV는 테라의 밸리데이터(블록체인 네트워크 검증인) 회사로서 최근 국산 암호화폐인 테라와 루나의 가격 폭락 사태에 대한 책임 여부를 심문할 필요가 있다”며 김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테라의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분석하는 업무를 맡은 DSRV는 테라와 루나의 가격 변동과 관련이 거의 없다. 테라는 DSRV가 검증한 수많은 블록체인 네트워크 중 하나일 뿐이다.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루나 가격 폭락 사태가 여전히 주목받는 상황에서 정치권은 인터넷 검색으로 관련 업체를 대충 찾아 국감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고 한 것 아닐까”라고 꼬집었다.

국회가 ‘스타트업 길들이기’에 나서자 스타트업들은 국회 보좌관 출신을 잇달아 영입하고 있다. 부동산 중개 스타트업 직방이 작년에 의원실 보좌관 출신을 영입한 데 이어 올 들어서는 두나무, 법률 플랫폼 로톡을 운영하는 로앤컴퍼니 등이 보좌관 출신을 채용했다.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명단에 올랐다 싶으면 업종과 관계없이 대관 전문가는 무조건 뽑아야 한다는 게 업계 통념이 됐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와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스타트업 250개사를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59.2%는 올해가 작년보다 어렵다고 답했다. 스타트업 투자 환경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 비율은 60.8%에 달했다. 스타트업 업계는 “정치권의 호통보다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토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