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의 3연속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 여파로 23일(현지시간) 다우지수가 연중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뉴욕증시가 얼어붙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이 “물가상승률을 2%로 되돌리기 전까지는 금리 인상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히자 경기 침체 공포가 확산한 탓이다. 미국에 뒤질세라 영국 스위스 등 13개국이 일제히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2차 역(逆)환율 전쟁’이 불붙었다.

미국 인플레이션은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면한 인플레이션 배경에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코로나19 사태로 시행된 천문학적 규모의 양적완화가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 기간 미국에 주택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주택 가격과 임대료가 계속 오르고 있다. 이 여파로 주택 비중이 높은 소비자물가지수(CPI)도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Fed가 설정한 물가상승률 목표치(2%)에 대해 “내년까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한 배경이기도 하다. 파월 의장이 “미국 경제의 연착륙 확률이 줄어들었다”고 고백할 정도로 경착륙 가능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세계 경제가 2023년까지 길고 지독한 경기 침체에 빠질 것”(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이라는 경고마저 나온다.

한국 경제는 말 그대로 ‘사면초가’에 빠졌다. 경제의 보루인 수출이 둔화해 무역수지 적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원가 가치가 폭락해 물가 상승 압력이 가중되고 있지만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만으로 환율을 누르기에는 역부족이다. 한국은행은 미국의 이번 자이언트스텝을 어느 정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미국의 자이언트스텝으로)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올리겠다고 한 전제조건이 바뀌었다”며 다음달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 가능성을 내비쳤다. 한은이 긴축의 폭을 키울수록 실질금리 상승에 따른 가계부채 부담이 폭증할 가능성이 높다.

그 어느 것 하나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어제 한 방송에 출연해 “높은 수준의 물가는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통 없이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파월 의장의 발언은 시사적이다. 우리 정부도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다해야겠지만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기업과 가계가 어떻게든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고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다만, 정부는 당장 경제 여건이 어렵다고 노동 연금 등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꿔나가는 구조개혁 노력을 절대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경제주체들 모두 긴장감 속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또 한 번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와 저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