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건너뛰기
중국은 신용카드 보급률이 낮기로 유명하다. 신용카드 인프라를 건너뛰고 현금 사회에서 모바일 QR결제 사회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개인용 컴퓨터(PC) 시대를 거치지 않고 온리(only) 모바일 시대로 직행했다.

이렇듯 산업이 단계적으로 성장하지 않고 기술 진화로 두 단계 이상 급격히 발전하는 현상을 ‘건너뛰기(leapfrogging)’라고 부른다. 건너뛰기는 핀테크처럼 기존 업을 크게 성장시키기도, 인공지능(AI)처럼 아예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선진국들은 기술 혁신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다음 건너뛰기가 될 만한 사업에는 적극적으로 규제를 완화한다.

건너뛰기는 공공 분야에서도 나올 수 있다. 대표적으로 신분증 및 인증 산업이 있다. 우리는 10년이 넘어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신분증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이웃 나라에서 신분증에 집적회로(IC칩)를 넣고, AI로 얼굴을 인식하는 것에 비해 뒤처졌다. 해외에서는 코와 입의 거리 비율, 눈과 눈 사이의 좌표값을 통해 나이가 들어도 혹은 성형수술을 해도 개인을 인증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모바일 운전면허증을 출시하며 건너뛰기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10초 안에 모바일로 송금하는 시대다. 그런 산업 발전에 맞춰 공공 분야의 인증사업도 발전해야 한다. 법원의 채권가압류 서류를 우편 등기로 받고, 그 서류를 다시 사람이 스캔하고 내용을 다시 입력하는 것은 정보기술(IT) 1등 국가다운 모습이 아니다.

아이러니컬하게 건너뛰기를 방해하는 것은 현재 우리 삶의 스타일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삶이 오히려 기술 혁신을 느리게 한다. 예를 들어 일본은 결제 방식 중 현금 선호율이 90%에 달한다. 그러다 보니 결제의 혁신 속도가 늦어졌고 이는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럴 때는 인위적으로 기술 혁신을 지원하고, 규제 완화로 시장을 키워줘야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논란이 된 기명식 전자지갑도 변경되는 전자금융거래법에서는 적극적으로 허용하고 기술 발전 흐름을 따르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전되길 희망해 본다. 규제 완화뿐 아니라 적극적인 인증 산업 육성으로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모바일 투표로 대통령을 뽑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