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시장경제 복원' 포기하지 말아야
지난 6월 정부는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제 복원을 전면에 내세운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민간 주도 성장을 지원하고 자유시장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각종 정책을 경제계는 크게 환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현재 한국 경제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우선 정부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경제 활동에 장애가 되는 각종 규제를 재점검하고 기업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법인세 감면을 추진했다. 하지만 규제심판회의 1호 안건인 대형마트 영업규제 완화는 소상공인의 반발로 추진 동력이 약해지고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정책도 ‘부자 감세’라는 비난에 국회 통과가 불분명한 상황이다. 이에 더해 최근 정치권에서는 고유가로 민생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역대 최고 실적을 올리고 있는 정유업계에 횡재세를 부과하자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금리 인상으로 서민들의 대출 이자 부담이 급증한 가운데 지난 2년간 임원들에게 대규모 성과급을 지급한 시중은행들에 대한 비난 여론도 만만치 않다.

시장경제 복원은 지극히 상식적인 슬로건이다. 문제는 이로 인한 효과가 즉각 나타나지 않아 여론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데 비해 이를 외면할 경우 치러야 하는 비용은 크다는 점이다. 일례로 대형마트 의무 휴업은 소비자 후생의 감소를 감수하고서라도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했다. 하지만 해당 규제의 효과에 대한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통시장 매출은 오히려 감소해 의도한 정책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인세 감면은 단기적으로 세수를 줄일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투자와 고용을 늘린다.

경제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 가운데 하나인 미국경제학리뷰를 비롯한 여러 국제 최저명 학술지에 게재된 최근 연구 논문들은 법인세 감면 등 기업의 투자 비용을 낮추는 정책이 기업의 투자뿐만 아니라 고용도 늘린다는 실증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전 정부가 재정 확충을 목표로 법인세를 인상한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외국인들의 국내 투자는 줄고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는 늘어 투자 순유출이 40조원을 넘어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횡재세나 시중은행의 성과급 지급을 둘러싼 논란 역시 단기적으로 여론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시장경제 원칙과 맞닿아 있다. 횡재세 도입으로 기업이 취할 수 있는 초과 이익이 줄어들고 초과 손실은 정부가 보전해준다면 기업의 혁신과 리스크 관리 동기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시중은행의 성과급 지급은 현 금리 인상기뿐만 아니라 코로나 위기 기간을 포함한 지난 2년간 시중은행의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는 데 기여한 임직원들의 효율적 리스크 관리에 대한 보상이다. 이런 보상체계가 부재하면 은행의 수익성 개선을 위해 임직원들이 쏟는 노력이 줄어들 것이다. 이로 인한 은행의 생산성 하락은 주주들의 수익을 낮추고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시장경제 복원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경제 주체의 동기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며 기업이나 금융회사의 ‘지나친 이윤 추구’를 비판하고 사회적 책무를 강요하며 가계와 기업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대답 없는 메아리에 그칠 뿐이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경제 주체의 행동 방식을 이해하고 이들의 선택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론에 이르게 하는 유인체계를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장경제 복원을 약속한 이상 정부는 경제 주체의 의사결정이 민간 주도 성장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게 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과학적 방법으로 측정된 근거와 자료를 바탕으로 국민과 이해 당사자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