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인사공백 해소가 국정쇄신의 시작
며칠 전 정부 부처 1급 자리가 얼마나 비어 있는지 조사해 ‘먹통 인사…정부가 안 돌아간다’란 기사를 내보냈다(한경 8월 5일자 A1, 3면). 관가에서 “인사가 너무 늦다”는 말이 자주 들리길래 숫자를 파악해봤는데 예상보다 높게 나와 놀랐다.

한국경제신문이 21개 중앙부처(18개 부처+금융위원회, 공정위원회, 국무조정실) 1급 자리 103개를 전수조사해 보니 공석이 23개나 됐다. 1급 자리 5개 중 1개가 비어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문화체육관광부는 1급 자리 절반 이상이 펑크나 있었고, 14개 부처는 1급 자리가 1개 이상 공석 상태였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다 돼가는데, 공직사회가 100% 풀가동되기는커녕 곳곳에 숭숭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관가에선 “인사안을 올린 지 두 달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란 말도 들린다.

곳곳에 빈자리…'먹통' 인사

이게 전부가 아니다. 교체 대상으로 결정됐지만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아 눌러앉아 있는 1급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공석 비율은 더 높다. 1급 인사가 지연되면서 국·과장 인사가 연쇄 차질을 빚는 사례도 수두룩하다. 보건복지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더 심각하다. 복지부는 정호영·김승희 장관 후보자가 낙마한 뒤, 공정위는 송옥렬 위원장 후보자가 사퇴한 뒤 새 후보자가 지명되지 않고 있다.

‘먹통’ 인사는 업무 공백으로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복지부 장관은 물론 방역 실무 책임자인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마저 공석이다. 국내 총인구가 정부 수립 이후 72년 만에 처음 감소하면서 ‘인구절벽’ 우려가 현실로 닥쳤지만 인구정책실장 자리는 방치돼 있다. 1급은 아니지만 미래 세대를 위한 연금개혁 과제를 맡는 연금정책국장 자리도 비어 있다. 윤석열 정부 핵심 과제인 원전 강화와 원전 수출 확대를 주도할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산업실장 자리도 감감무소식이다. 화물연대 파업이 이어지고 있지만 국토교통부 교통물류실장 자리는 지난 5월 이후 정해지지 않았다.

관가는 붕 뜬 채 업무 차질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텨야 하는 게 공무원 사회이긴 하지만 ‘땜빵’엔 한계가 있다. 인사 공백이 길어지면 어디선가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이미 관가에선 “새로운 일은 시작도 못한다” “공직사회가 붕 떠 있다”는 말이 돈다.

안 그래도 지금 우리 경제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국민의 체감 경기는 나빠지고 있다. 미·중 갈등과 공급망 불안으로 외교안보는 물론 경제안보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런 위기를 헤쳐가려면 기본적으로 공직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야 한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24%(한국갤럽)까지 추락한 데는 인사 공백과 이에 따른 업무 차질도 한몫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가장 큰 이유는 인사(23%)였다. 경험과 자질 부족·무능(10%), 독단적·일방적(8%), 소통 미흡(7%)을 앞섰다.

인사 공백이 길어지는 건 인사 검증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과거 정부에서 인사 검증을 했던 대통령실 민정수석실이 폐지되면서 현 정부에선 신설된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인사 검증을 주도하고 있는데, 이 과정이 매끄럽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휴가를 마치고 8일 업무에 복귀하자마자 인사 공백부터 서둘러 메울 필요가 있다. 국정 쇄신도 여기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