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재정 만능주의에 어퍼컷 날리자
“지난 정부는 재집권할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닐까요. 나중에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렇게 지출과 부채를 늘렸는지….”

얼마 전 만난 전영준 한국재정학회장은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정부 총지출이 200조원 이상 늘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 회장은 “윤석열 정부는 경제 성과를 부풀리기 위해 재정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며 “노인 일자리만 양산하는 공공일자리 예산이나 각종 청년 퍼주기 사업,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일시적으로 벌인 사업 등의 예산을 삭감하면 새 정부에서 연간 20조원 지출 구조조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건전 재정' 시동은 걸었는데…

윤 정부가 출범 후 첫 예산안(2023년도)을 짜고 있다. 이달 안으로 편성을 마무리해 다음달 2일까지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윤 정부는 지난달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지난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를 폐기하고 ‘건전 재정’을 전면에 내세웠다. 관리재정수지(사회보장성기금을 제외한 재정수지) 적자를 3%(2022년 말 5.2%) 이내에서 관리하고, 국가 채무 비율은 50% 중반(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 기준 50.1%)을 넘기지 않도록 하는 재정 운용 방향을 확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회의에서 “예산만 투입하면 저절로 경제가 성장하고 민생이 나아질 것이라는 재정 만능주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재정부는 이에 따라 내년 예산(총지출)을 올해 본예산(607조7000억원)보다 5%가량 늘리는 선에서 편성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정부가 2018년 이후 매년 9% 안팎 늘려온 것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의 증가폭이다. 1·2차 추경을 포함한 올해 전체 예산(679조5000억원)보다도 적은 규모다. 전년도 예산(추경 포함)보다 규모를 줄인 본예산 편성(국회 통과 기준)은 2010년 이후에는 없었다.

재정 건전화에는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1일 국회에서 “내년 예산은 역대 최고 수준의 지출 구조조정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내년도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경직성 경비를 뺀 재량 지출을 10% 이상 감축하라’는 지침을 각 부처에 내려보냈다.

고강도 지출 구조조정 불가피

정부 안팎에서는 재량 지출과 관련해 지출 규모에 한도를 씌우는 등 직접적인 통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영국에서는 일부 복지지출 항목에 대해 총량과 1인당 급여에 한도를 설정하고 있다.

문제는 실현 여부다. 노인 일자리 사업이나 각종 청년수당 등을 축소하면 기존 수혜자들의 반발이 일어날 수 있다. 임명현 국회예산정책처 기획관리관은 ‘월간 나라재정 8월호’ 기고문을 통해 지출 구조조정과 관련 “재정 지출에 기득권 구조가 강하게 형성돼 있다면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임 기획관리관은 “어느 정부든 국민이 싫어하는 ‘옳은 정책’과 좋아하는 ‘잘못된 정책’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지출 구조조정을 위해선 스웨덴의 에델개혁과 같은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도한 복지로 재정 위기를 겪던 스웨덴은 1992년 에델개혁을 통해 실업·양육수당 축소 등 복지 대수술을 단행했다. 예란 페르손 당시 스웨덴 총리는 “빚이 있는 자에게는 자유가 없다”며 국민에게 국가 부채 감축을 위한 개혁을 설득했다.

잘못된 정책은 이전 정부에서 할 만큼 했다. 이제는 옳은 정책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라도 국민에게 지출 구조조정을 설득해야 한다. 재정 만능주의 환상에 어퍼컷을 날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