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명인의 손맛
남자가 멋 내는 것도 스스럼없는 세상이 됐다. 여자는 옷과 화장, 액세서리로 끝없이 멋을 낼 수 있지만 남자는 멋 낼 만한 것이 별로 없다. 남자가 멋 내는 포인트는 넥타이와 시계라고 한다. 하지만 넥타이는 옷에 맞춰 고민하며 골라야 하고 좋은 시계는 돈이 넉넉해야 한다. 혹자는 남자 패션의 완성은 벨트라고도 한다. 전문가들의 말이 맞을 것이다.

촌스러운 생각이지만 남자의 멋은 구두에서 완성된다고 말하고 싶다. 비싼 구두를 신자는 뜻이 아니다. 어떤 구두든 반짝반짝 깨끗하게 닦고 걸으면 기분이 묘하게 좋아진다. 어릴 적 김이 모락모락 나는 대중목욕탕에서 온몸의 때를 벗기고 나왔을 때의 순수한 청량감과 같다. 그러려면 구두를 잘 닦아서 신어야 한다. 필자는 머리를 집에서 깎지 않듯이 구두도 집에서 닦지 않는다. 전문가가 한 번 닦으면 2~3주는 광이 난다. 불과 몇 분 안에 오만촉광의 빛나는 구두를 신게 해주는 우리나라 구두닦이 전문가들의 솜씨는 가히 경이롭다.

남들은 맛집을 찾아다니지만 필자는 구두닦이 장인을 찾아다닌다. 그동안 여러 곳에서 수많은 장인을 만나 구두를 잘 닦았지만 출퇴근길과 맞지 않으면 계속 다니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학교 근처를 뒤지던 중 ‘인생’ 구두닦이 장인을 만났다. 2년 전 만난 이분은 ‘명인’이다.

첫째, 불로 쪼이는 광내기(불광)는 구두에 손상이 간다며 일절 하지 않는다. 융으로 된 천에 물을 묻혀 수많은 ‘손놀림’으로 광택(물광)을 낸다. 둘째, 맨손에 구두약을 묻혀 구두 전체에 꼼꼼히 바른다. 50여 년 장인의 ‘손’에는 손금이 남아 있지 않다. 셋째, 대충은 없다며 구두닦이 기술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는 ‘예술가’의 열정이 있다. 파리가 앉으면 미끄러질 듯한 구두의 찬연한 광은 그냥 나는 게 아니다. 초벌과 재벌, 마무리까지 3겹 코팅이 가죽 속에 녹아 들어가게 하는 정성이 필요하다. 작업에 혼신의 힘을 쏟으니 나도 모르게 숨죽여 지켜보게 된다. 60을 훌쩍 넘긴 세계 최고의 구두닦이 명인에게 겨우 몇천원의 ‘작품’ 값을 건넬 때는 송구한 마음이다. 해외에 나갔을 때 구두닦이를 접해 봤지만 아직까지는 우리처럼 광택을 내는 곳을 본 적이 없다.

아들, 딸 잘 길러 성공시켰으니 이제 구두 일 그만둬야겠다 하여 걱정이 앞선다. 그때까지라도 명인의 손맛 솜씨에 멋 내려고, 오늘도 기꺼이 양재천을 건너서 남부순환로까지 20분을 걷는다. 세계를 놀라게 하는 한류에 K팝, K드라마, K무비만 있는 게 아니다. 세계 최고 K구두닦이 ‘명인의 손맛’도 우리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