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윤 대통령,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부실 인사 논란에 대해 “그럼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 다른 정권 때하고 한번 비교해 보세요”라고 받아쳤다. 언론과 야당의 비판에 대한 불만이 잔뜩 배어 있었다. 이 말은 당연히 적절하지 않다. 국민은 윤석열 정부를 평가할 때 문재인 정부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권력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인심은 조급하고 야멸차다. 약간의 실수도 너그럽게 넘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치는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이렇게 까다로운 국민과 언론을 상대하는 고단한 일이다.

이런 것 말고도 윤 대통령이 스트레스받을 일은 첩첩산중이다. 무엇보다 시운이 좋지 않다. 지금 경제는 무척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인플레이션도 골치 아프지만 이제 막 시작된 경기 침체는 바닥이 어디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실물경제 선행지표인 구리가격이 대폭락하는 가운데 중국 원자재 기업들은 덤핑을 시작했다. 시화공단에는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컨테이너가 쌓이기 시작했다.

먹고사는 문제가 대두되면 국민은 지도자를 쳐다본다.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대통령 자리를 맡았다. 영광은 멀고 고난은 가까이 닥쳤다.

경기 침체는 고용부터 때릴 것이다. 가장 걱정스러운 곳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일자리다. 실효성 있는 일자리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경제주체들의 고통 분담을 통해 기업 비용을 낮추고 임금을 조정해야 한다. 추경호 부총리가 얼마 전 대기업들에 임금 인상 자제를 요청해 젊은 직장인의 빈축을 산 적이 있다. 발언 취지와 관계없이 말하는 순서가 잘못됐다. 공무원과 공공부문의 솔선 의지를 먼저 밝혔어야 했다. 애초에 이런 생각이 없었다면 민간에도 요구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고통 분담은 대통령과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금융감독원장이 은행 금리 인상을 막으려면 조직 예산과 판공비를 반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민간 기업에 기름값 인상 자제를 요청하려면 정부 청사도 에어컨 사용을 줄여야 한다.

규제혁파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일자리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 규제개혁의 최대 장점은 돈이 안 든다는 것이다. 민간만 대상으로 하라는 법도 없다. 예를 들어 골프장과 태양광 일색인 새만금에 대규모 스마트팜 단지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다. 농업의 기업화, 식량안보 기반 구축, 신규 고용 증가라는 이점이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식생활 물가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도 높아진 상태다. LG처럼 스마트팜 진출을 원하는 대기업과 해당 지역 간 상생 구조를 만들면 농민들 반발도 덜할 것이다.

윤 대통령에게 또 하나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구조개혁과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달라는 것이다. 경제 사정이 어렵다고 미뤄버리면 경기 회복기에는 더 어려워진다. 멀쩡한 사람이 수술을 받으려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현재 윤 정부에 가장 부족한 것을 꼽으라면 변화와 개혁에 대한 속도감이다. 정권교체가 실감 나지 않는다는 국민이 많다. 내년 하반기에 개선안을 마련한다는 연금개혁 일정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한가 싶다. 문제점, 인구추계, 연금 추이, 해결 방향 모두 나와 있다. 한두 달이면 될 일을 1년 이상의 장기과제로 돌려버렸다. 게다가 내년 하반기는 2024년 총선을 앞둔 시기다. 여야가 정치적 사활을 걸고 격돌하는 시점에 연금개혁이 제대로 될까. 나는 안 될 것이라고 본다.

노동개혁, 교육개혁도 실행 가능성이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방향성을 제시했다고는 하지만 어떤 과제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최저임금도 16.4%나 끌어올렸다. 방향엔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정권의 지향성을 보여주는 솜씨 하나는 평가할 만했다. 지금 윤 정부엔 이런 종류의 속도감과 긴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문 정부의 PD’ 탁현민에게 특강이라도 요청해야 할 판이다. 이런 와중에 민주노총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사드 기지의 교착은 그대로이며, 제복을 입은 경찰은 삭발 시위를 한다.

민생이든, 구조개혁이든 윤 대통령에겐 고난의 행군이다. 유일하게 기댈 언덕은 국민의 동의와 지지다. 윤 대통령의 솔직하고 진정성 어린 화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다”고만 하지 말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공감을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