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인생의 축소판' 골프
골프가 대세다. 골프장에서 사진을 찍는 골프장 인증샷이 유행이고, 지상파·케이블·유튜브 채널에서도 골프 예능 프로그램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코로나를 계기로 젊은 골프 인구가 급속도로 늘었음을 필드에 나가 보면 실감한다.

나에게 골프는 특히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어릴 때부터 걷는 것이 다소 불편했던 나는 두 번의 큰 수술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골프를 즐길 수 있었고, 이제는 나에게 거의 유일한 운동이 됐다. 나는 18홀 라운딩 속에 인생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교훈과 경륜이 숨어 있다고 늘 생각한다.

골프는 무엇보다 정직함과 겸손함을 요구하는 운동이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 가끔 홀인원 같은 행운이 찾아오지만, 대체로 연습과 실전량에 결과가 정비례한다. 골프는 특히 힘을 빼야 잘되는 운동이다. 목이나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면 예외 없이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온다. 한번 잘 쳤다고 자만하다가는 바로 다음 샷을 망칠 수 있고, 반대로 미스샷에 낙담하지 않고 집중하면 바로 회복이 가능하다. ‘장갑 벗어봐야 안다’는 말처럼, 새옹지마(塞翁之馬)나 전화위복(轉禍爲福)과 같은 고사성어가 가장 잘 적용되는 것이 골프임을 골퍼들이 잘 알 것이다.

지난해 언감생심, 생각지도 못한 홀인원의 행운을 얻었다. 가벼운 부상으로 잠시 쉬다가 두 달여 만에 처음 하는 라운딩이라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가볍게 쳤더니 찰싹 맞는 느낌과 함께 공이 홀컵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아닌가. 다시 한번 겸손함의 위대함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만약 내가 뭔가 해보겠다고 힘을 주고 욕심을 부렸다면 가능했을까? 골프에는 체력 못지않게 정신력, 즉 멘탈이 중요하다고 한다. 어쩌면 멘탈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마음이 어지럽거나 집중되지 않으면 어김없이 안 맞고, 평온한 마음이면 잘 맞는다. 60대가 30대를 이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운동이기도 하다.

골프에는 인생이 숨어 있는 것만 아니다. 골프는 함께 라운딩하는 사람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운동이기도 하다. 최소한 5시간 이상 함께 걷고, 얘기하고, 먹고 마시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새 자기의 성격과 정직함, 겸손함을 아주 쉽게 타인에게 드러내 보이는 운동이다.

골프 인구가 급속히 늘면서 필드에서 아쉬운 장면도 자주 눈에 띈다. 골프는 무엇보다 매너와 에티켓 그리고 룰을 존중하는 스포츠다. 정해진 룰에 따라, 동반자와 다른 내장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최소한의 매너와 에티켓은 기본이다. 골프를 신사도 게임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많이 자유로워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원칙과 기본은 지키는 것이 좋을 것이다. 늘어나는 골프 인구를 보면서 기술과 기량에 앞서 룰과 에티켓을 먼저 공부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