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문호 괴테가 《파우스트》를 완성한 것은 82세 때였다. 24세에 구상했으니 거의 60년이 걸렸다. 그가 죽기 1년 전 탈고한 이 역작은 독일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그는 이 작품의 아이디어를 어린 시절에 본 인형극에서 얻었다. ‘파우스트’라는 이름의 마법사 이야기를 다룬 인형극이 곳곳에서 열렸는데, 호기심 많은 소년 괴테는 여기에 푹 빠졌다.

괴테의 호기심은 어릴 때부터 유별났다. 새의 깃털이 날개에 어떻게 붙어 있는지 살펴보려고 깃털을 하나씩 뽑아봤다. 꽃잎 받침대의 상태가 궁금할 땐 꽃잎을 한 잎씩 뜯어가며 관찰했다. 이는 노년에 이를 때까지 남다른 창의력과 상상력의 원천이 됐다. “작가는 여든의 나이에도 소년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명언이 그 속에서 나왔다.

괴테만 그런 게 아니었다. 어린아이의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본 천재는 많다. 괴테를 존경해서 흉상까지 간직했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그랬다. 그는 괴테를 “역사상 가장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극찬하면서 하늘은 왜 푸른지, 구름은 왜 생기는지를 골똘하게 생각했다. 또래 친구들이 불러도 듣지 못할 정도로 생각에 잠기곤 했다.
여든 나이에도 '소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 [고두현의 문화살롱]

아기 정수리처럼 말랑하게…

그는 훗날 “내가 일상의 여러 현상을 놀라워하게 된 것은 어릴 때 말을 늦게 배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자네와 나는 우리가 태어난 이 세상의 놀라운 수수께끼 앞에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서 있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되네”라며 나이 들어서도 소년의 시각을 유지할 것을 강조했다.

호기심은 창의성의 원천이다. 아이의 궁금증은 근원적이다. 갓난아기의 정수리처럼 말랑말랑한 감수성이 상상력을 북돋운다. 여기서 유연한 사고가 싹튼다. 인류의 위대한 업적을 결정짓는 요소도 창의력과 상상력, 공감력이다.

학자들은 이런 특성을 ‘인지적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인지적 유연성은 서로 다른 개념을 받아들이거나 완전히 새롭게 변하는 환경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행동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유연한 사고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거나, 아이디어 간에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드는 중요한 능력이다.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업무 역량을 키우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가장 창의적인 상상력을 발휘한 ‘르네상스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10세 안팎의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사생아로 태어난 그는 라틴어를 배울 수 없어 좋은 직업을 얻기 어려웠고 지식인 사회에 편입되지 못했다. 대신 자연을 교실 삼아 호기심을 키우고 남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상상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는 사람들이 그냥 스치는 현상에 궁금증을 품고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딱따구리의 혀는 어떻게 생겼을까.” “악어의 턱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때로는 “눈을 움직이게 하는 건, 한쪽 눈의 움직임이 반대쪽까지 움직이게 하는 건 어떤 신경인가”라는 메모를 노트에 남겼다.

현실과 공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이야말로 다빈치가 지닌 창의성의 뿌리였다. 이 상상력을 지성에 적용하는 능력이 곧 창의력이다. ‘모나리자’의 신비로운 미소 뒤에는 수많은 얼굴 근육이 숨겨져 있다. 다빈치가 입술과 눈, 표정을 좌우하는 44개의 미세 근육을 섬세하게 해부하고 관찰했기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다빈치에게 홀딱 반한 현대 기업가 중 한 사람이 스티브 잡스다. 그는 애플의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창의성이 발생하는 곳은 교차점이다. 예술과 기술의 교차점! 이를 보여준 궁극의 인물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그는 또 “다빈치는 예술과 공학 양쪽에서 모두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며, 그 둘을 하나로 묶어 천재가 되었다”며 “기술은 상상력 없이 발전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잡스가 새로운 기술에 트렌디한 디자인을 접목해 정보기술(IT)업계의 최고 자리에 오른 건 이 덕분이었다.

상상력 없는 기술을 척박

첨단 정보통신 분야뿐만 아니라 영상 부문에서도 아이의 호기심과 창의적인 사고는 더없이 중요하다. 불멸의 블록버스터 ‘스타워즈’를 제작한 조지 루카스 감독은 영화의 성공 비결에 관해서도 “만약 당신이 11세 소년의 호기심을 읽을 수 있다면 블록버스터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세계적인 논픽션 미디어그룹인 디스커버리커뮤니케이션의 창업자 존 헨드릭스는 ‘디스커버리 채널’의 성공 노하우를 ‘호기심 마케팅’이라고 요약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우리 사업은 방송업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세상을 탐험하고 호기심을 만족시키도록 돕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내일은 소파 방정환이 제정한 ‘어린이날’의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22년 ‘어린이날’을 만들 때부터 그는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위를 향해 올려다)보아 주시오”라고 당부했다.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에 나오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구절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는 어른들이 잃어버린 어떤 소중한 가치를 따로 가지고 있다. 그 깨끗하고 선한 모습, 해맑은 호기심의 자세를 어른들이 배워야 한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윌리엄 워즈워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 설레느니,
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다 자란 오늘에도 매한가지,
쉰 예순에도 그렇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노니 나의 하루하루가
자연의 믿음에 매어지고자.
여든 나이에도 '소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 [고두현의 문화살롱]
그러나 호기심은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쉽게 퇴화하는 근육과 같아서 나이 든 뒤에는 기능을 잃기 쉽다. 생텍쥐페리가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도 마음속의 어린이를 자꾸만 잃어버린다.

내일 아침에는 어린 날 썼던 일기장을 한번 들춰 봐야겠다. 혹시 그 속에 잃어버린 무지개가 숨겨져 있지나 않을까. 어쩌면 무뎌졌던 호기심이 연초록 풀꽃처럼 되살아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