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갈등의 정치학'에서 '혁신의 정치학'으로
대선이 끝났다. AP통신은 한국 대선을 ‘오징어 게임’에 비유했다. 지면 죽는 선거라는 것이다. 성숙한 민주주의라면 누구에게 투표했건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정상일 것이다. 이제부터가 더 걱정이다. 비전과 정책이 아니라 미움과 증오로 가득찼던 대선의 후유증 때문이다. 이념·지역·계층·세대·젠더 갈등 등 갈등이란 갈등은 다 쏟아진 게 이번 대선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도 첨예한 갈등 구도가 언제 또 폭발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갈등을 통합으로 이끄는 예술이 정치라는 주장은 지금의 한국 정치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 얘기다. 오히려 정치는 갈등 에너지로 폭주하는,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 같다. 이제는 기존 정치로는 도저히 풀거나 제어할 수 없는 수준의 갈등에 이른 게 아닌지 위기감을 넘어 절망감이 들 정도다. 파시즘이 무엇인가. 편을 갈라 상대를 죽이는 정치다.

극심한 내부 갈등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나라는 외부 위협이 눈앞에 닥쳐도 대응할 수 없다. 국가의 사활이 달린 외부 위협조차 안에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데 어떻게 이용할지 골몰한 나머지 왜곡되고 만다. 무장 해제나 다름없다. 그 끝은 파국이고, 나라가 망하는 것이다.

대통령 당선인은 외부 위협부터 직시해야 한다. 매우 까다롭고 복합적인 외부 위협이다. 미·중 충돌, 코로나19,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경쟁에 우크라이나 사태로 신냉전 양상까지 더해지고 있다. 체제 대결, 자국중심주의 공급망 재편과 경제 블록화, 테크노내셔널리즘 등 하나같이 한국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지정학(geopolitics)·지경학(geoeconomics)·기경학(technoeconomics)적 위협 요인이 한꺼번에 튀어나온 형국이다. 자칫하면 안보·경제·산업·기술 등 총체적 위기로 직행할 판이다.

역사는 외부 위협에 허망하게 무너진 국가가 있는가 하면 외부 위협을 창조적으로 활용한 국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창조적 불안정(creative insecurity)’이란 개념을 만든 마크 J 테일러는 《혁신의 정치학》에서 그 답을 찾았다. 한국의 혁신도 외부 위협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사례다. 북한의 위협, 일본의 위협, 중국의 위협 등이 그렇다. 지금은 어떤가. 정치 실패로 내부 갈등이 외부 위협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외부 위협에 창조적으로 대응할 수 있겠는가. 내부 갈등이 발목을 잡으면 디지털 전환도, 탄소중립·에너지 전환도 기대하기 어렵다. 대전환에 뒤처지거나 실패한다는 것은 곧 국가의 추락이다.

정치가 만든 갈등, 정치가 해결해야 한다. 과거처럼 정치가 국력을 결집한다는 명분으로 갈등을 눌러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박정희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또 다른 전체주의 유혹은 갈등만 더욱 깊게 할 뿐이다. 갈등 자체가 아니라 다양한 갈등을 흡수하고 해소할 정치적 출구가 제한돼 있다는 게 문제다.

정치혁신 말고는 답이 없다. 갈등을 증폭시켜온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와 이쪽이냐 저쪽이냐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양당 독점 구조부터 깨는, 새로운 정치적 틀의 마련이 절실하다. 서로 다름에 대한 합의, 남에 대한 배려, 다원주의, 관용으로 내부 갈등을 혁신 에너지로 바꾸지 못하는 정치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정치혁신 없이는 규제개혁도 공염불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정부 개입 및 강한 규제는 동전의 양면이다. 기득권으로 고착된 양당 독점구조에서 어느 쪽이 집권하든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역대 정부가 규제개혁에 다 실패한 이유다. 새 정부가 직면한 안팎의 경제 현실은 출발부터 엄혹하다. 코로나19 전개 과정의 불확실성, 중국의 성장률 하락, 인플레이션 리스크, 공급망 불안, 신냉전 리스크 등 부정적인 요인들이 둘러싼 가운데 잠재성장률이 1%대를 향해 추락하고 있다. 경제가 이대로 저성장의 함정으로 빠져들지, 반등의 전환점을 마련할지 중대 기로에 서 있다.

혁신으로 기회를 많이 창출하는 게 성장이다. 한국이 갈등을 딛고 다시 혁신의 길로 가려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규제개혁으로 과학기술과 비즈니스를 꽃피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개인과 기업의 자율과 창의를 극대화하는 기업가형 성장 모델이다. 새 정부는 ‘갈등의 정치학’을 끝내고 ‘혁신의 정치학’을 써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