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2’에서 한국 기업이 보여준 저력은 자못 감동적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혁신의 경연장’ ‘미래를 가장 먼저 만나는 곳’으로 불리는 행사에서 인공지능을 로봇·가전·자동차에 접목한 신제품으로 각종 혁신상을 휩쓸었다. 현대차는 로봇과 모빌리티, 메타버스를 결합한 ‘메타 모빌리티’ 개념을 주창해 큰 박수를 받았다. 현장에서는 “사람이 붐비는 곳에는 언제나 한국 기업이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귀국하는 한국 기업인의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는 말이 많이 들린다. 신기술이 국내외에 널려 있어도 규제 때문에 사업하기 어렵다는 게 기업인들의 걱정이다. CES에서 혁신적 의료 기술로 환호를 받은 ‘루미네이트’ 서비스도 그런 사례다. 이 서비스는 피부에 붙이는 유전자 검사용 패치 하나로 피부암 등 건강 상태를 체크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다수 기업이 이와 비슷한 기술을 갖고 있다. 문제는 규제다. 미국 등지에서는 병원을 거치지 않아도 환자에게 직접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반드시 진단 때 병원과 함께해야 한다. 검사 항목도 제한돼 있다. 사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국내 기술기업은 ‘그림의 떡’ 정도로 여기고 있는 실정이다.

규제가 혁신의 발목을 잡은 게 이뿐이겠나. 현 정부는 5년 내내 ‘4차 산업혁명 선도’ ‘규제 혁파’를 외쳤지만 실상은 퇴보였다. 우버엑스·카풀·타다 같은 혁신적 이동서비스가 나올 때마다 기득권 비호 논쟁이 되풀이되면서 혁신의 싹이 잘리기 일쑤였다. 로톡(법률서비스 중개 플랫폼)과 강남언니(의료광고 플랫폼)등 타 업종 혁신기업도 마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 1호’ 기업가가 규제의 벽에 막혀 신용 불량자로 전락했다거나 국내 최고의 자율 주행 스타트업이 거미줄 규제를 피해 일찍이 미국행을 선택한 것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원격 진료도, 배달 로봇도, 드론도 각종 규제 벽에 막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 57곳이 한국이라면 아예 창업조차 못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은 ‘기술 혁명’이 아니라 ‘규제 혁명’이라는 말이 있다. 규제 혁파 없이는 한 발짝도 혁신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지적과 다름없다. 대선 후보들은 기업인이 맘 놓고 뛸 수 있는 기업 환경부터 약속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