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북청 물장수와 제주 삼다수
서울에 상수도가 등장한 것은 1908년이었다. 그전까지는 청계천이나 정릉 골짜기, 우물에서 길어온 물을 마셨다. 인구가 급증하면서 하천이 오염되자 물을 사 먹을 수밖에 없었다. 물장수 중에는 함경도 북청(北靑)에서 온 사람이 많았다. 이들은 고향 사람들과 합숙하며 물지게를 지고 온 동네를 누볐다. 여기에서 ‘북청 물장수’라는 말이 나왔다.

물 한 지게 가격은 20전 안팎이었다. 합숙소에서 자고 나온 물장수들이 물 한 지게와 밥 한 끼를 맞바꿨다니 물값이 곧 밥값이었다. 이들은 하루 10~30가구씩 구역을 정해 서로 침범하지 않았다. 나중엔 영업권을 지키기 위한 ‘수상(水商)조합’까지 결성했다.

그 사이에 나무로 된 물통은 양철통으로 변했다. 물장수들이 파는 물은 개천이나 우물물 대신 수돗물로 바뀌었다. 수도사업이 관영으로 전환된 뒤에도 물장수는 6·25전쟁 이전까지 명맥을 유지했다. 수도관이 닿지 않거나 지대가 높은 곳에서는 물을 사 써야 했다.

1990년대 중반 국내에 생수 판매가 허가된 뒤에는 ‘현대판 물장수’가 나타났다. 이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제주 삼다수’다. 1998년 3월 첫선을 보인 뒤 24년째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올해는 매출 3000억원을 넘어섰다. 300여 업체가 난립한 국내 생수시장(1조원)의 3분의 1에 육박한다.

삼다수가 북청 물장수처럼 물 시장을 지배하게 된 비결은 뭘까. 우선은 한라산 지하 420m에서 끌어올린 청정 화산암반수 덕분이다. 용암층과 퇴적층이 시루떡처럼 쌓인 지층, 구멍 뚫린 현무암이 불순물을 걸러내는 천혜의 조건을 겸비했다. 다른 곳보다 석회질이 적어 물맛이 부드럽다.

화산섬인 제주도의 자연친화적인 환경과 깨끗한 물을 연계한 브랜드 마케팅도 한몫했다. 프랑스 생수 에비앙이 알프스 자락에 있는 에비앙 마을의 빙하 호숫물로 만든다는 점을 강조한 것과 같다. 2018년부터 도입한 가정 배송과 비대면 판매시스템, ‘무라벨·무색캡·무색병’의 ‘3무(無)’ 생수 ‘제주삼다수 그린’ 반응도 폭발적이다.

어쩌면 1960년대까지 물이 귀했던 제주에서 암반수의 숨은 가치를 발견하고 상품화한 역발상 전략이 가장 큰 성공 요인일 수 있다. 척박한 서울살이 환경에서 물장수로 신시장을 개척한 북청 사람들의 아이디어도 이와 닮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