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新금융의 길'을 기다리며…
금융결제원장으로서 금융결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상유십이(尙有十二)’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앞두고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라고 한 말씀이다. 마침 결제원은 12개의 소액결제망을 운영하고 있다. 상유십이, 무슨 결제망이 12개나 되냐고 묻는다면, 새로운 사업이 추가될 때마다 이에 맞는 결제망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픈뱅킹망을 별도로 운영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방식은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오픈뱅킹망에 장애라도 생기면 다른 금융망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고 백업으로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제망, 간단히 얘기하면 돈과 결제 정보가 오가는 길이다. 도로, 철도뿐만 아니라 통신망, 수도망 모두 무언가를 주고받는 길의 한 형태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돈과 금융 정보가 오고 가는 길이 필요하다. 이 길을 금융인프라라고 부른다. 신용 정보가 오가는 길은 신용인프라, 돈이 이동하는 길은 결제인프라인 것이다. 자고로 좋은 길은 막힘이 없고 사통팔달 그 짜임새가 효율적이어야 하며, 안전은 기본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 중 세계 최고인 것이 꽤 많다. 반도체, 배터리, 가전 등 우리나라 사람이면 다 안다. 그러나 잘 모르는 것이 있다. 바로 결제망이다. 1초면 돈을 보내고, 1분이면 대출까지 가능한 은행 서비스를 가진 나라는 지구상에 대한민국밖에 없다. 해외에서 돈을 보내거나 찾아본 사람이라면 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결제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길은 사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한때는 어음, 지로 같은 종이장표가 자금이 흐르는 통로였다. 이후 금융전산화가 본격화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계좌이체 같은 전자적인 자금의 길이 열렸다. 이제는 금융회사가 아니어도 누구나 그 길을 활용할 수 있는 개방의 시대, 일명 오픈뱅킹 시대로 접어들었다. ‘끊임없는 혁신과 헌신’으로 시대가 원하는 새로운 길을 닦으며 이뤄낸 결과다.

얼마 전 한 금융회사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며 글로벌 투자자의 관심을 받고 있는 회사다.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안전하고 효율적인 금융결제망을 꼽았다. 훌륭한 길이 있었기에 그 길 위에 혁신을 꽃피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제인프라의 한 축을 담당하는 기관의 수장으로서 뿌듯한 마음과 함께 책임감도 든 순간이었다.

이러한 책임감을 안고 자문해 본다. 우리 금융의 길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MZ세대라는 새로운 소비자,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기술과 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금융유통망, 현실 세계를 닮은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시장을 위해 우리는 어떤 길을 마련해야 할까? 이제 2022년이 코앞이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우리 금융의 길에는 또 어떤 새로움이 놓여 있을지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