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말 대북 의제들을 잇달아 던지고 있다. 지난 9월 유엔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꺼낸 데 이어,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남북한 산림협력을 불쑥 제안했다. 앞서 지난달 29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북한 방문을 요청했다. 그러나 북한은 물론 국제사회의 호응을 얻지도 못한 채 일방적으로 이런 의제들을 던질 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남북한 산림협력만 해도 그렇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북·미 협상에 도움이 되는 선순환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박 수석의 기대대로 되고, 황폐한 북한의 산림을 울창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북한은 산림협력을 남북한 관계의 ‘비본질적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 2018년 9월 남북한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 산림협력이 포함됐지만, 진척이 전혀 없다. 정부가 북한 산림 지원을 위해 매년 수십억원을 들여 키운 수백만 그루의 묘목들은 처치 곤란한 상태라고 한다. 산림협력은 유엔 제재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북한이 적극적 자세를 보였다면 성과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산림협력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이 주장한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종전선언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숙원을 풀자는 듯 한·미 훈련과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핵우산 제공 폐기 등 한·미가 수용하기 힘든 조건들을 들이밀고 있다. 종전선언 뒤 북한이 도발 사이클을 다시 돌릴 때의 대책도 안 보인다. 미국이 ‘순서, 시기, 조건’을 콕 집어 반대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G20 정상회의 기간에도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다급한 외교 현안은 뒷전인 채 온통 종전선언에만 매달렸으니 답답하다.

교황 방북도 3년 전 문 대통령 요청에 교황이 “초청장이 오면 가겠다”고 했지만, 아무 진전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번에 같은 질문과 답변이 반복됐다. 그러다가 청와대 대변인은 “교황이 따뜻한 나라(아르헨티나) 출신이어서 겨울에는 움직이기 어렵다고 알고 있다”고 했다. 교황이 곧 방북할 것처럼 띄우다가 힘들 것 같으니 날씨 핑계를 댄 것은 아닌가. 외교에도 다 때가 있다. 임기 6개월 남짓 남은 정권이 실현가능성이 극히 의문인 일을 시한에 쫓기듯 업적 만들기용으로 밀어붙일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