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기업의 우려와 두려움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실태조사 결과가 또 나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중대재해처벌법 이행 준비 및 애로사항 조사’가 그것이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응답기업의 67%가 법 시행일(내년 1월 27일)까지 ‘경영책임자의 의무준수’를 따르기 어렵다는 대목이다. 그 이유가 더 딱하다. ‘의무내용이 불명확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답변이 47%, ‘준비기간 부족’이 31%다. 의무준수가 어렵다는 기업이 50~100인 규모에서 77%에 달한 것을 보면, 작은 기업일수록 부담이 가중된다는 사실이 거듭 확인된다. 시행령이 마련됐고, 시행까지 석 달 남았는데도 이런 반응이면 이 법은 제 기능을 해내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중대재해법은 제정 초기부터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조사보다 더 분명하고 솔직한 산업현장의 입장 표명도 드물 것이다. 대·중소기업의 거듭된 우려와 불만, 반대의견이 조사결과에 다 담겨있다. 의무적인 사전준비 조항만이 아니다. 과도한 처벌조항에도 기업인은 공포에 떨고 있다. 법 시행 시 예상되는 애로로 ‘의무범위가 과도하게 넓어 경영자 부담 가중’(62%, 중복답변), ‘종사자 과실로 재해 발생해도 처벌 가능’(52%), ‘형벌수준이 과도해 처벌 불안감 심각’(43%) 등이 꼽혔다.

법의 주요한 요체는 ‘명확성’이다. 지켜야 할 것, 해선 안 되는 것에 대해 시비나 논란의 여지가 없어야 제대로 지켜진다. ‘안전사고는 안 된다’는 명분과 당위론 차원의 대전제만 강조한 채, ‘무엇’과 ‘어떻게’에 대한 기준과 요건이 명료하지 않은 게 이 법의 근본 결함이다. ‘경영책임자 규정’ 등 여러 쟁점이 시행령에서도 모호하니 기업은 앞으로 부딪힐 점검·감시·감독행정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어떤 조항, 어떤 논리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될지 겁나는 게 이해된다.

이 정도라면 법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런 법을 두고 준법, 법치주의를 말하기도 어렵다. 경영인 과잉처벌, 기업에 대한 포괄적 책임과 요구 등 이 법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너무도 많은 비판과 개정요구가 있어서 다시 거론하기도 지칠 지경이다. 이번 실태조사를 보면서 시행령을 재정비하고, 시행 유예도 검토해야 한다. 대상자들의 일관된 우려를 엄살로 여겨선 곤란하다. 다수가 지킬 수 있어야 법이다. 무엇보다 좀 더 명료해야 한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식의 규정이 법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