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빵 도둑과 나라 도둑
얼마 전 마트에서 쌀과 고구마를 훔친 70대 남성이 절도 혐의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설탕과 사탕을 훔치다 붙잡힌 80대는 벌금 50만원에 처해졌다. 지난해엔 달걀을 훔친 40대가 징역 1년형을 받았다. 그는 코로나 사태로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는 바람에 1주일 동안 굶고 물만 마셨다고 한다.

생계형 절도범인 ‘현대판 장발장’이 늘고 있다. 소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이 19년을 감옥에 갇힌 것도 빵 한 조각 때문이었다. 살림살이가 어려우면 도둑이 들끓게 마련이다. 가난한 집에는 빚도 늘어난다.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들의 부채만 858조원에 이른다.

이 와중에 저소득층에게 돌아가야 할 긴급 생계자금을 빼돌리는 등 나라 곳간을 좀먹는 공무원들이 늘고 있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모은 정보로 부동산 투기에 앞장서고 천문학적 이익을 챙기는 권력형 도적떼마저 날뛰고 있다. 여기엔 정치권에 줄을 댄 협잡꾼과 대법관, 특검, 검찰총장, 변호사, 국회의원, 대선 후보까지 얽혀 있다.

《장자(莊子)》 ‘거협()’편에 ‘갈고리를 훔친 자는 형벌을 받고 나라를 훔친 자는 제후가 된다’는 말이 나온다. 갈고리(鉤)는 쇠로 된 갈고랑이나 혁대 끝을 끼우는 쇠단추로, 하찮은 물건이다. 이런 좀도둑과 달리 ‘큰 도적’은 나라를 좌우하니 이를 비꼰 말이다.

이런 ‘큰 도적’은 곡식을 되(升)와 말(斗)로 재게 하면 되와 말을 훔치고, 저울로 달게 하면 저울을 훔치며, 인의(仁義)로 행실을 바로잡게 하면 인의를 도적질한다. 스스로 성(城)을 구축하기는커녕 남이 애써 쌓아올린 성을 빼앗는다. 결국에는 그 성에 갇히고도 자기가 주인인 줄 안다.

다산 정약용 또한 ‘큰 도둑’을 경계했다. 지위가 높아 도덕성이 더 많이 요구되는 높은 관리를 큰 도둑, 그보다 덜한 하급 관리를 작은 도둑으로 구분하고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생계형은 도둑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했다. 대신 국가 중책을 맡은 자들의 공인된 도둑질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작은 절도범보다 나라 말아먹는 ‘큰 도적’이 더 문제다. 눈 밝은 국민이 ‘나라 걱정’으로 자기 몸을 상하는 동안, 눈 멀고 귀 막은 도적들은 ‘자기 걱정’ 탓에 나라를 망친다. 아수라장이 된 선거판까지 겹쳤다. 눈을 크게 뜰수록 ‘눈먼 도적’들만 사방에 득시글거리니 씁쓸하기 짝이 없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